1924년 6월 15일


조선인 청년을 사랑한 일본인 처녀
아버지, 강제로 일본인과 약혼시켜

 
“평택역전 다전창웅(平澤驛 多田昌雄)의 사랑하는 딸 다전정지(多田靜枝·19)는 지난 십오일 밤 열두시쯤 되어 행방불명이므로 평택경찰서에서 수색원을 제출하였더니, 전의경찰관(全義警察官)에게 붙잡혀 돌아왔는데, 이제 그 자세한 사실을 들은 즉 정지라는 처녀는 동 역전 김진봉(金鎭鳳·20)과 재작년부터 비밀리에 연애를 하여 오던 바, 해와 달이 갈수록 사랑이 더욱 깊게 되어 인종 차별도 금전도 학식도 다 상관없이 다만 순결한 연애뿐인데, 그 부모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김진봉에게는 허락지 않고 평택역전 부전모(平澤驛前 富田某)에게 급속히 약혼하여 한 집에 있게 하였으나 정지는 뜻이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하여 독약과 단도로 최후의 길 밟기까지도 목적을 달하지 못하고 감시 중에 이번까지 세 번이나 도망한 것이라고”(동아일보, 1924년 6월 20일자)

‘사랑’은 어떤 의미일까? 사전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어떤 상대를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고 하고 죽음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 ‘갑돌이와 갑순이’라는 노래가 있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서로 사랑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다. 이 역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으로써 끝을 맺는다.

1924년 6월 15일 평택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주인공이 있었다. 요즘은 다문화사회고 결혼도 국제결혼이 흔한 일이지만, 당시는 일제강점기로 한국인과 일본인의 민족적 차별뿐만 아니라 여전히 전근대의 차별적인 요소가 남아있었다. 그래서 일본인과 한국인이 연애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피식민지인 한국인에게 딸의 결혼을 용인한다는 것은 성인이 아니면 불가능할 정도로 차별이 심했다.

평택역 앞에 일본인 타다 마사오(多田昌雄)가 살고 있었는데 타다 시즈에(多田靜枝)라는 19살의 딸이 있었다. 시즈에는 일본인보다는 차별받는 조선인 김진봉(金鎭鳳)을 아버지 몰래 사랑하게 됐다. 시즈에보다 한 살 많은 김진봉은 평택역 앞에서 생활했던 것으로 보아 이른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별 볼일 없는 20세의 청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해가 가고 달이 갈수록 사랑은 깊어져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사이가 됐다. 시즈에의 아버지 타다 마사오는 딸과 연애하는 김진봉이 탐탁하지 않았다. 그래서 같은 일본인 토미타(富田)라는 청년을 딸과 강제로 약혼을 시켰고 약혼을 했기 때문에 토미타의 집에 함께 지내도록 했다.

김진봉과 시즈에는 비록 민족은 다르지만 인종이나 학식·경제력도 상관없이 사랑을 나누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즈에는 아버지가 맺어 준 토미타를 사랑하지도 않았고 또 사랑할 수 없었다. 결국 죽기로 결심하고 독약을 먹기도 했고 칼로 자살을 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더 이상 사랑이 없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야반도주를 한 것이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세 번째 야반도주도 성공하지 못하고 전의(全義)에서 경찰관에 붙잡혔다. 이루어질 수 없는 차별의 시기에 살았던 김진봉과 시즈에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평택에서 일어난 멋진 스토리텔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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