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선지원 후 추첨’의 방식은
우선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특정 중학교에
지나친 혜택을 주는 불평등한 방식이며
특정학교의 발전을 저해하고
일부 학생들에게 평등한 교육권을
제한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 김해규 소장
평택지역문화연구소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는 획기적인 인재선발 방식이었다. 신분과 혈통을 중시했던 고려시대의 과거제도보다 개인의 실력을 중시했고 지식과 교양·인품을 두루 평가기준으로 삼아 전인적 인재선발이 가능했다. 출세를 위해 과거급제가 중요해지면서 사대부가의 아들들은 어려서부터 과거공부에 매진했다. 좋은 선생이 있으면 불원천리 달려갔고, 경제력이 넉넉한 벌족가문에서는 독선생을 모셨다.

조선후기 당쟁이 치열해지면서 과거급제는 가문과 붕당의 사활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래서 붕당마다 서원을 세우고 가문에서는 가문에서 운영하는 종학당을 세워 후학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서원과 서당에서는 도학(道學)보다는 과거시험 준비에 초점을 둔 교육이 실시되었다. 기출문제가 책으로 엮여 불티나게 팔리고, 족집게 과외선생이 귀한 대접을 받는 풍속도 나타났다. 학문과 교양·인품을 고루 갖춘 전인적 인재선발이라는 명분도 점점 희석되었다. 그래서 조선후기 이규상(1727~1799)은 ‘우리나라 선비들은 어릴 때부터 머리가 하얘질 때까지 외우기만 하고 쓸데없는 것에다 죽도록 머리를 썩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1974년 서울지역에서부터 실시된 고교평준화는 자유보다 평등의 원리에 기초한 교육정책이었다. 조선후기의 과거시험처럼 암기식 교육의 폐단을 개혁하고 국민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며, 전인적 인재양성을 실현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당시 제3공화국 정부도 암기식, 주입식 교육의 폐단을 개선하고 고등학교 사이의 학력차를 줄이는 한편, 인구의 대도시 집중 방지와 과중한 학습부담 감소가 목표라고 발표했다.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평택지역 고교평준화가 주요 이슈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필자가 2002년 ‘고교평준화’ 문제를 제기했을 때의 냉담한 반응을 생각하면 가히 획기적이다. 당시 필자는 고교평준화가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권력과 이권이 나눠져 대립과 분열이 나타나는 문제점을 해소함으로써 평택지역의 통합과 발전에 필요한 정책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평준화는 시기상조였다. 그러다가 지난 해 경기도교육감의 공약사항으로 제시되고 지역 정치인들이나 교육사회단체에서도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이제는 지역분열의 해소뿐 아니라 미래 지역발전의 확고한 토대로서 필요성이 재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평택지역이 고교평준화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학교의 선지원 후추첨제 문제다. 중학교의 선지원 후추첨은 전국의 모든 중학교가 평준화로 가고 있을 때 당시 평택교육장의 의지로 평택시에서만 실시되었다. 이 방식은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그럴 듯한 명분을 내걸었지만 지방일수록 강세를 보이는 공립학교에 우수자원을 밀어주고 사립학교를 약화시키려는 정책으로도 읽혀졌다.

실제로 평택지역에 중학교 선지원 후 추첨이 실시된 지난 10여 년간 공립 중학교들은 지원자가 차고 넘쳐서 추첨으로 걸러내야 했지만 H중·S중·J중과 같은 지역 내 유수의 사립 중학교들은 학생 부족과 지원학생의 수준미달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평준화의 원리가 ‘모든 국민들에게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주는 것’, ‘학문과 교양·인품을 두루 갖춘 전인적 인재양성’에 있다면 중학교 ‘선지원 후 추첨’의 방식은 우선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특정 중학교에 지나친 혜택을 주는 불평등한 방식이며, 특정 학교의 발전을 저해하고, 일부 학생들에게 평등한 교육권을 제한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모쪼록 고교평준화 논의에 앞서 중학교 입시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조처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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