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를 맞는
우리들의 마음은 더더욱 아프다.
304명은 우연히
진도 앞바다 맹골수로에 빠져
유명을 달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우리들이
망자들의 죽음에 대한 부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 김기홍 위원장
노동당 경기도당
‘4월은 잔인한 달’.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의 t.s 엘리어트라는 ‘황무지(荒蕪地)’라는 그의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그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읊은 이유는, 생명이 봄이 되어 새롭게 피어나고 그 고통스러운 현실을 살아가고 죽어갈 것이기 때문에 잔인하다는, 인생무상과 덧없음에 대한 아픈 읊조림이리라.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세월호 넋들은 찬란히 꽃피워야 할 시기에 꽃망울 한번 제대로  못 터뜨리고 떠났다. 인생무상과 덧없음의 깨달음과는 다른 더 큰 절망이자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 그 자체이다.

세월호와 타이타닉 침몰사고, 미국 뉴올리언스시를 폐허로 만든 카트리나 허리케인,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엑손 발데스 원유유출 사고 같은 것들은 모두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고 평가받는다.

이 사건들은 대체로 사소한 초기 문제를 방치했고, 문제를 인지하고 나서도 부적절한 시정조치를 취했으며, 상황이 통제 불능이 되거나 극한 상황에 이르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 1주기를 맞는 우리들의 마음은 더더욱 아프다.

304명은 우연히 진도 앞바다 맹골수로에 빠져 유명을 달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우리들이 망자들의 죽음에 대한 부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하인리히법칙’에 따르면 한 번의 큰 사고 전에는 300번의 징후와 29번의 경고가 있다. 그래서 하인리히법칙을 흔히 ‘1:29:300 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사실 이번 세월호 사고는 우리사회의 총체적 난맥상을 모두 노출시켰다. ‘관피아’ 유착 문제, 기업의 이윤만을 최우선시하는 문제 등 우리사회에 잠복해 있는 수많은 고질병들이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다.

세월호가 화물을 많이 싣기 위해 평형수를 뺏듯이 우리사회도 경제적 부를 많이 쌓기 위해 사회의 중심을 이루는 중요한 것들을 빼냈다.

이제 지나치게 많은 거추장스러운 짐들을 들어내고 기본을 더 채워야 할 때다. 평형수를 더 채워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평형수는 무엇일까? 기업의 이윤보다는 사람을 중시하는 사회, 소명의식을 갖는 직업윤리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안전 불감증, 늑장대응, 인력 부족, 예산 부족, 전형적 인재, 대응 매뉴얼 부재 같은 말들을 수없이 들었다.

우리는 위기를, 징조를 이제 더 이상 낭비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진실을 규명하자고 만든 ‘세월호 특별법’이 더 이상 진실에 다가갈 수 없는 이상하게 특별한 법이 된 기가 막힌 현실에서 ‘낭비’는 계속되고 있다. 진상조사의 대상자인 해양수산부가 진상조사의 주체가 되는 비정상의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망자를 떠나보낼 수 있는가? 그래서 살아남은 자들은 슬프다. 아니 절망한다.

우리사회는 평형수를 채워 균형을 맞추고 있는가? 기업의 이윤을 위해 해고를 쉽게 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직업윤리가 있을 수 있을 수 있는가? 어떻게 관피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1주기를 맞이하는 살아있는 우리들은 망자들을 볼 면목이 없다.

‘4월 16일’. 국가개조를 외쳤던 박근혜 대통령은 남미로 해외순방에 나서고, 북유럽으로 해외연수를 떠난 자치행정위원회 소속 평택시의회 의원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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