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화紙花를 피우는 건 수행의 시간”

 

불교지화, 전통문화 위상·우수성의 극치
꽃 한 송이에 6개월, 해외서 가치 인정

   

 
내 자신을 돌아보고 우주 속에서의 나를 가늠해 보는 일을 불가에서는 수행이라 하고 속가에서는 마음 다스리는 일이라고 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간절히 우는 것처럼, 한 송이 종이꽃을 피우기 위해서도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깨달아가는 간절한 수행이 있어야 한다.

운명처럼 접한 전통지화
“1982년 충북 단양에 있는 구인사에서 부처님께 귀의했어요. 출가하자마자 절에서 초파일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연등을 만들게 됐고 해마다 반복되는 일을 하다 보니 이 분야에서 더 깊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스님들께 배우게 됐죠”
한국전통지화연구보존회장을 맡고 있는 송덕사 주지 석용 스님(48)은 우리나라 전통지화의 맥을 이어가는 이수자로 잘 알려져 있다. 벌써 몇 번의 개인전을 통해 지화의 아름다움을 선보인 석용 스님은 부처님오신 날을 맞아 다양한 종이꽃들을 피워내느라 여념이 없다.
“한지에 천연염색을 입히고, 숙성 과정을 거치고, 일일이 주름을 잡고, 꽃 모양을 재단하고, 대나무살을 준비해 꽃을 만드는 과정은 6개월 정도가 소요돼요. 극도의 자기인내를 거쳐야 하는 일이니 비록 불가에 귀의했다고 해도 왜 중간에 그만두고 싶지 않았겠어요. 그래도 꽃 한 송이 피우는 일이 불가의 수행이라는 생각으로 참고 또 참으며 견뎌냈죠. 해마다 찾아오는 초파일 행사 덕분이기도 했구요”
석용 스님은 범패 인간문화재인 권수근 스님에게 천태종의 지화기법을 이어받았다. 권수근 스님은 천태종 총무원장인 춘광 스님에게 지화를 전수했고 춘광 스님은 이를 다시 석용 스님에게 전수했다. 석용 스님은 출가한 1982년부터 지화를 만들기 시작해 2008년 10월 서울 관문사 성보박물관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연 뒤, 지난 2009년 남산한옥마을에서 초청특별전, 부산 삼광사 초청특별전을 열었다.

6개월 인고로 피우는 꽃
“전통지화는 대체로 연꽃·모란·작약·국화 등이 주를 이루고 그 외에 다알리아나 불두화 등도 많이 만들어요. 2004년 대전에서 처음 전시할 때는 죽은 배나무에 지화를 올려놓은 작품을 만들었는데 반응이 참 좋더라구요. 이후 다른 여러 전시를 거쳐 2009년 서울 인사동 갤러리에서 ‘천년의 향기’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시작했죠”
석용 스님은 지화로 알려지기 전 ‘북치는 스님’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음과 박자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탓에 끝없이 연습을 거듭해야 했다는 석용 스님은 무엇이든 한번 배우면 끝까지 파고들어 완벽하게 소화해내고야 마는 예술가의 열정도 함께 갖고 있다.
“한번 작업을 시작하면 새벽까지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저런 일들도 해야 하니까 작업에만 몰두할 수 없어 한 번에 몰아서 하게 되는 일도 많구요. 지화를 만드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 아닌 게 없죠. 부처님께 올린 꽃 공양은 그만큼 큰 공덕으로 쌓인다는 생각에 손끝이 갈라지고 손마디가 굵어져도 지화 만드는 일을 멈출 수가 없어요”
현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영산재’의 장엄부문 전통지화 이수자이기도 한 석용 스님은 한미문화예술재단에서 전통공예분야 분과위원장을 맡아 해외 각국에 우리나라 전통예술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전통지화 아름다움 알릴 터
“꽃은 불교행사에서 맨 처음 하는 의식인 육법공양에도 들어갈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요. 지화는 단순히 옛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통미가 고스란히 담겨있고 생화에 버금가는 간절함이 담겨있는 꽃이죠. 전통 한지에 천연염색의 색을 입혀 말린 뒤 손으로 꽃잎 하나하나를 접는 인내를 이겨내야만 비로소 피울 수 있는 꽃이니까요”
원예기술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 지화는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제작이나 사용이 간편해 여러 행사에 사용됐다. 하지만 생화가 보편화됨에 따라 지화 제작 방법이 점차 사라졌고 현재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런 사라져가는 전통을 살리기 위해 엣 문헌과 사료에 기록된 전통기법을 재현해 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석용 스님은 불교의 전통공예인 지화가 다시 평가되고 조명돼야 한다고 말한다.
“불교지화는 한국 전통문화의 위상과 우수성의 극치예요. 우리나라에서보다 해외에서 아름다움을 더 인정받고 있죠.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해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예술로 승화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마음을 많이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종이가 꽃으로 피어나고 꽃이 법문으로 승화되는 아름다운 인연의 자리를 지켜가는 석용 스님, “꽃 한 송이 정성 다해 불상 앞에 공양해도 이와 같은 인연으로 많은 부처를 만나게 된다”는 법화경의 한 구절처럼 석용 스님은 5월 25일 법당 한 켠에서 불기 2559년 부처님오신 날을 장식할 꽃을 정성스레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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