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기는 내면의 상처 치유하는 일”

 

삶과 죽음 사이에서 죽음 대신 선택한 詩
세 번째 시집 후 열린 눈으로 세상 보게 돼

   

 
문학을 한다는 것은 세계와 인간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해 가는 과정이지만 이것은 곧 나 자신에 대한 성찰과도 일맥상통한다. 문학을 통해 나 자신을 알게 되는 일, 그것은 문학이 주는 가장 커다란 혜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던 시 쓰기
“서른한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으니까 벌써 23년째 시와 씨름하고 있네요. 스물여덟 살에 첫 아이를 낳은 뒤 심한 산후우울증으로 죽음을 생각했을 때 차라리 죽을 각오로 내가 좋아하는 일에 매달려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때부터 정말 미친 듯이 시집을 읽기 시작했어요”
김영자(54) 시인은 평택보건소에 근무하는 공무원이자 벌써 세 번째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다. 천생 시인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아직도 소녀 같은 미소를 간직한 김영자 시인은 당시 죽음과 맞바꿨던 시가 쓰면 쓸수록 아픔의 근원을 건드렸고 이때마다 글로 옮겨 적으며 객관화시켜야 했다고 말을 잇는다.
“안성 공도에 있는 만수터가 어릴 적부터 자란 고향인데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5남매를 키우며 살았어요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집이 있어서 매일 저수지 수면에 비치는 달빛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느끼며 어린 시절을 보냈죠. 천성이 내성적이어서 그런지 항상 외롭고, 쓸쓸하고, 가난이 뒤엉킨 가운데 들풀처럼 자랐어요”
김영자 시인은 1991년 <문학공간>으로 등단했다. 매일 시집 10여권씩을 읽고 틈만 나면 시를 써대며 시에 미쳐서 살았던 시간의 결과였다.

인생의 새 출발, 영자의 전성시대
“공무원을 하게 될 줄은 꿈도 꾸지 않았어요. 그러나 삶이라는 것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었죠. 조직문화와 시 쓰는 일이 거리가 있어 힘이 들긴 했지만 그것도 차츰 적응이 되더라구요. 꿈보다는 현실이 절실했으니까요. 지금은 어느새 잘 맞는 옷처럼 내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죠”
그녀가 낸 세 권의 시집은 1993년 <문은 조금 열려있다>, 2000년 <아름다움과 화해를 하다>, 2014년 <푸른 잎에 상처를 내다>이다. 첫 번째 시집은 그녀가 시를 통해 세상의 문을 열고 나간 시기들의 발자취이고 두 번째 시집은 수많은 내면의 원망들과 화해하던 시기, 그리고 지난해에 낸 세 번째 시집에는 그녀 스스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며 살았던 시기들의 내밀한 기록이 빼곡히 담겨 있다.
“둘째 아이가 어릴 때 남편이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떴어요. 이후에는 혼자 세상에 남겨진 것 같은 두려움으로 내 상처를 아무에게도 내보이지 못하고 혼자 속으로만 꼭꼭 묻어두며 살았죠. 힘들어도 아닌 척 하고, 아파도 안 아픈 척 하고, 그런 상처들이 아마 시 속에 전부 묻어난 것 같아요.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게 세상은 어둠 그 자체였으니까요”
김영자 시인은 40대 초반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사별한 지 7년 만이었다. 군대에서 중령으로 제대한 현재의 남편은 늦게 만난 만큼 그녀 안에 숨어 있던 내밀한 상처들을 어루만져 주고 시인으로서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말없이 도와준 소중한 친구였다. 대학원에 갈 수 있도록 부추겨준 것도, 문학 행사가 있을 때마다 그림자처럼 곁을 지켜주며 살뜰히 보살펴준 것도 지금의 남편이었다고.

세 번째 시집 출간 후 넓어진 시야
“세 번째 시집에는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어린 시절 상처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있는데 이 시집을 내고 나서야 오래 품었던 내 상처가 단단하게 아물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이제야 정말 나에게서 벗어나 세상과 다른 사람의 아픔까지도 보듬는 시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죠. 어쩌면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일지도 모르겠어요”
김영자 시인은 2006년 공무원문학회가 창단한 이후 초대 회장을 맡아 현재까지 계속 공무원문학회를 이끌고 있다. 또한 평택시민예술대학에서 문예창작 반을 맡아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시민들을 위해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제 퇴직까지 5~6년이 남았는데 퇴직한 후에는 복지센터나 주민센터에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자유로운 감성을 가진 시인인 만큼 퇴직 후엔 남편과 함께 여기저기 여행 다니고 싶은데 그동안은 열심히 현재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거예요”
죽을 것 같은 간절함으로 시를 시작한 김영자 시인, 이제 더 큰 세계로 눈을 돌려 삶의 깊고 뜨거운 시들을 쏟아낼 김영자 시인이 그려낼 네 번째 시집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것은 문학을 통해 인간이라는 우주를 알아챈 그녀의 시가 얼마나 더 단단해져 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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