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접한 판소리, 이젠 제 삶이죠”

 

판소리에 恨 담아내는 평택 소리꾼
서편제 보며 소리 매력에 빠져들어

 

 
운명은 때때로 인간은 절대 모르는 상태에서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가혹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무리 이 길이 아니라고 몸부림치며 거부해도 마치 무엇엔가 이끌려가듯 여전히 과거와 현재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삶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운명처럼 만난 판소리
“스무 살 때 처음 서편제라는 영화를 봤는데 처음부터 그 소리에 빠져들고 말았어요. 서편제의 내용이 온통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거든요. 아픈 아버지 얘기도 그렇고 힘들게 살아가는 삶도 그렇고, 노래에 담긴 한이 모두 내 얘기를 하는 것만 같았죠. 그래서 서편제 영화를 통째로 외워버렸고 그때부터 형편이 나아지면 꼭 판소리를 배우겠다고 마음먹었죠”

비전동 재랭이시장 인근에서 이산국악사를 운영하고 있는 엄익현(42) 씨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조상현 명창에게서 사사 받은 소리꾼이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어려운 가정형편을 이어가야 했던 그는 문득 그때가 생각나는지 잠시 말을 멈춘다.

“어릴 때부터 공사장 막노동부터 포장마차, 농장일 등 안 해본 게 없지만 열심히 일해서 아버지 약을 사는 것은 우리 가족에겐 너무 당연한 일이었어요. 군대 다녀온 뒤에도 서울에서 옷 장사도 하고 전국을 다니며 영덕 대게 장사도 했는데 IMF가 닥치면서 더 힘들어졌죠. 가족이 무허가로 살던 팽성 집에서도 쫓겨나고 아무리 일해도 앞이 보이지 않아 서른 살 때는 농약을 사다놓고 죽으려고도 했어요”

엄익현 씨는 죽으려고 마음먹은 순간, 그동안 무심히 봤던 풍경들이 눈물 나게 아름다워 보였다는 말을 들려준다. 힘들고 외로운 순간들이 이어졌지만 2003년 다행히도 쌍용자동차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형편이 조금 안정되자 이내 판소리를 배우기 위해 안성에 있는 방기준 선생과 중요무형문화제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인 조상현 선생을 찾아가 소리공부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판소리와의 만남
“비교적 늦은 나이에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가슴 속에 응어리가 많아서인지 스승님들께 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판소리는 한이 있어야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하니까요. 회사에 다닐 때도 쉬는 시간이면 다리 밑에 가서 소리연습을 했는데 항상 목이 다 쉬어서 돌아오곤 했죠”

먹고 사는 일을 완전히 외면할 수 없었지만 틈나는 대로 하루 4~5시간씩 연습을 했다는 엄익현 씨는 판소리를 할 때가 정말 행복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행복도 잠시, 엄익현 씨는 2009년 쌍용자동차 사태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 직장을 그만두어야만 했다고.

“당시 해고대상자는 아니었지만 함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어요. 그런데 파업투쟁을 하던 그때 아내가 첫 아이를 한 달이나 일찍 조산하게 된 거예요. 돌봐줄 사람이 없었고 결국 여러 이유들로 인해 직장을 그만둔 후 국악사를 차렸죠. 그것이 그나마 소리와 생업을 함께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엄익현 씨는 7년 동안 쌍용자동차에 다녔지만 정작 결혼 후에는 아내에게 한 번도 월급을 갖다 주지 못한 채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며 웃는다. 현재 국악사가 생각처럼 잘 운영되는 건 아니지만 민서·예서·현서까지 세 아이를 둔 아빠가 되었고 아내가 항상 곁에서 기운을 북돋아줘서 고맙고 힘이 난다.

평택에서 소리꾼으로 살기
“판소리는 물소리·바람소리·동물소리 같은 사물의 소리는 물론이고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소리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배움의 길이 멀고 험해요.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하는데 아이들을 키워야 하니까 지금은 어떻게든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에 연습을 많이 못하고 있어 안타깝죠. 그래도 제가 가야하는 길은 소리의 길이고 그건 끝까지 변하지 않을 거예요”

판소리로 일가를 이루려면 30년 정도는 수련을 쌓아야 가능한 일이라는 말을 하는 그의 눈빛이 사뭇 진지하다. 쏟아지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그는 앉은 자리에서 ‘이산 저산’이라는 판소리 한 대목을 읊는다. ‘봄은 찾아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구나’라는 판소리 한 대목이 듣는 사람의 마음속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인생을 그리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지금은 어떤 일이 닥쳐도 겁나지 않아요. 긍정적인 제 성격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셋이나 되고 내 편이 되어주는 아내가 함께 있으니 두려울 게 없죠. 조금 더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날도 생기지 않겠어요?”

화려한 것이나 값비싼 무엇보다 가족이 소중하다는 판소리 전수자 엄익현 씨, 젊은 나이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겪어버린 그는 가족을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만 있다면 원 없이 소리에 매달리고 싶다며 도포자락을 젖히고 앉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다시 ‘이산저산’ 한 대목을 애절하게 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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