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에겐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

 

희망 품을 때마다 절망이 함께 따라와
늘 참아냈던 아내 뒷모습 이제야 보여

 

 
부부의 얼굴이 닮아가는 것은 비단 오랜 세월 때문만은 아니다. 상대가 웃을 때 나도 함께 웃고, 상대가 슬플 때 나도 함께 슬퍼해주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그에 따른 얼굴주름의 형태가 서로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평생을 함께 기뻐하고 슬퍼해줄 가장 좋은 친구, 그 이름은 바로 ‘부부’다.

자유로운 영혼의 철없던 시절
“생각해보니 참 철없이 살았어요. 어려서도 내가 갖고 싶다면 망원경을 사줬을 정도니 특별히 부족함 없이 자랐고 고등학생 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그 길을 가지 못하고 원예분야를 전공했죠. 살아오면서도 항상 뭔가 맞지 않는 느낌으로 끌려가는 것 같은 삶을 살아야 했고 그 때문에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신혼 때도 항상 밖으로만 돌았죠”

송탄 이충동에서 샤브샤브 전문점 ‘게으쭈루’를 운영하는 김승복(56) 대표는 지난 청춘의 일들을 묻자 한마디로 철이 없었다고 표현하며 웃는다. 그러나 시인이 되고 싶었던 자유로운 영혼으로 개인적인 이익이 난무하는 세상과 화합하는 것이 그다지 쉽지는 않았을 터, 그는 내재된 예술적 끼를 되살려 8년 동안 남대문에서 직접 디자인한 옷을 만들어 팔며 집 밖에서 떠돌기도 했다.

“남대문에서 장사하는 동안 내가 디자인한 옷이 일주일도 안 돼 벌써 샘플이 퍼져있어 장사할 의욕을 점점 잃어갔죠. 그러다 어느 날 농사를 짓는 지인의 권유에 옷 장사를 그만두고 1991년 화성 동탄에 내려왔는데 경험도 없이 하우스농사를 지었다가 완전히 빚더미에 올라앉은 거예요. 아내도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내려와 마음고생 많이 했어요”

김승복 대표는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고 구치소에서 3개월을 복역하기도 했는데 당시 빚더미에 올라앉은 상황에서도 합의금을 구하기 위해 아내가 사방으로 뛰어다녔다며 옛일을 회고한다. 아내 강영옥 씨가 지금도 인생에서 가장 힘든 기억이라고 떠올리는 일이다. 김승복 대표는 세상과 부딪치는 일이 나름대로는 세상과 타협하며 인생을 배워가는 과정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본 아내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쌀 살돈도 없더라구요. 궁리 끝에 지인의 소개로 서울 중계동 지하상가에서 스낵코너를 하기로 했는데 주방장을 고용할 돈이 없어 아내와 제가 직접 해야 했죠. 그때 개업을 도와주는 전문 주방장에게 만두와 우동을 3개월 배워 본격적으로 음식업에 뛰어들어 설거지부터 다시 시작했죠”

동탄에서 서울까지 매일 출퇴근해야 했던 김승복 대표의 첫 배달고객은 공교롭게도 아내의 전 직장동료들이 있는 은행이었고 김 대표는 결국 아내에게 배달통을 맡겨야 했다며 죄를 고백하듯 털어놓는다. 그는 배달을 가서 음식을 전하는 것이 자존심을 꺾는 일처럼 그렇게 힘들었다고.

“다행히 장사가 잘 돼서 어느 정도 빚도 갚았어요. 그런데 그때 IMF가 터졌고 가게들이 줄줄이 문을 닫기 시작했죠. 아는 분 말을 듣고 인천에 만두공장을 차렸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판로가 없는 거예요. 나중에는 아파트마다 찾아다니면서 아내가 직접 만두를 쪄서 팔았는데 몸집도 작은 여자를 정글 같은 곳에 혼자 두고 오던 마음을 지금도 뭐라 설명할 길이 없네요”

김승복 대표는 잠시 말을 멈춘다. 오래 감춰뒀던 그때의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 까닭이다. 본인 역시 늦둥이 막내를 차에 태우고 부지런히 판로를 찾아다녔지만 아무도 선뜻 판로를 열어주지 않았다. 그러다 제법 큰 규모의 업체와 계약을 하고 한창 꿈에 부풀던 찰라, 일명 ‘쓰레기만두’ 사건이 언론을 타고 일파만파 번져 또 다시 나락으로 떨어져야 했다.

서로의 애틋함이 녹아있는 부부
“한참 힘들던 때에 아내가 지금 이 식당을 보고 왔더라구요. 조금 손보면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두 개를 함께 하기는 부담스러워 공장을 접고 내려왔는데 그게 벌써 10년이 됐네요. 이젠 어느 정도 자리도 잡히고 손님도 많아졌지만 지금도 힘든 시절을 생각하면서 늘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들고 손님에게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김승복 대표는 아무리 힘이 들어도 남편의 뜻을 받들며 따라준 아내 덕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얻은 우울증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나이 오십이 넘은 지금은 눈을 돌리는 곳곳에서 아내의 고단한 뒷모습이 보여 그저 안쓰럽기만 하다.

“아내는 참 현명한 사람이에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늘 긍정적인 생각으로 앞날을 먼저 생각하거든요. 그게 늘 미안하고 고맙고 그래요. 딸들에게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있거든 항상 엄마를 닮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제는 제가 더 잘 해야겠다 생각하죠. 아내보다 하루 더 살아서 아내를 지켜줬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에요”

김승복·강영옥 부부는 1년 전부터 사진이라는 같은 취미를 갖고 한 달에 한번 씩 부부만의 시간을 갖는다. 얼마 전에는 해외 출사도 함께 다녀왔다. 이제는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려 노력한다는 김승복 대표, 긴 세월 함께 웃고 울어서인지 살아오는 동안 언제가 가장 좋았느냐는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지금’이라고 대답하는 부부의 순하고 고운 미소가 참 많이도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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