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 산문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죠”

 

읽고 나면 마음에 남는 시 쓸 터
여행 중 이동시간이 시 구상 시간

 

 
시집을 읽다보면 시인의 내밀한 내면세계와 만나게 된다. 시인마다 쓰는 기법이나 성향이 다르니 읽고 난 느낌 역시 모두 다르겠지만, 쉽게 읽힌다 생각했는데 막상 읽고 나면 유독 독자의 마음 한 구석을 왠지 불편하게 만들고 숨기고 싶었던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시가 있다.

어린 시절의 불합리했던 풍경들
“아버지를 비롯한 동네 분들은 경상도에서 모인 이주민들로 땅을 계간하기 위해 팽성읍 신대리에 정착했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평생을 바쳐 개간한 땅을 세종대학교 측에서 자신들의 땅이라고 소송을 걸어 오랫동안 싸워야 했죠. 마을 전체가 소송에서 패했을 때 부모님이 우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엄마는 잠든 나를 안고 목구멍 깊은 곳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우셨죠”

권혁재(51) 시인은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중앙에서 활발한 시작활동을 벌이고 있다. 2009년 단국문학상 수상, 시집 <투명인간> <잠의 나이테> <아침이 오기 전에> <귀족노동자> 등을 출간하며 열정적인 시 쓰기에 매진해 온 시인은 어린 시절부터 보았던 세상에 대한 불평등과 불합리한 모습들을 시 전반에 녹여 그려낸다.

“어머니는 미군부대 공사현장에서 중지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셨고, 아버지는 평생을 소작농으로 살며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죠. 형은 1980년대 초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야 했는데 부모님이 서울에서 공부하는 나를 배려하느라 알리지 않아서 두 달이 지난 후에야 그 사실을 알고 오열했던 기억이 있어요”

권혁재 시인은 자신의 시가 주로 불편한 것들에서 많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불평등·부정의·불협화음 등 그런 것들을 목격하게 될 때면 그것이 시로 형상화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쉽게 읽히다가도 다 읽고 나면 어딘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져 스스로 문득 부끄러워지는 그런 시가 바로 권혁재 시인의 시다.

 

고1 때부터 문학에 관심 가져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선생님 덕분에 문학세계에 눈을 뜨게 됐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 교내 백일장에서 장원한 것이 계기가 돼서 문학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학보사에서 신문도 만들고 교지도 만들었는데 국문과에 들어가면 가난하게 산다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단국대학교 국문과에 진학했죠”

권혁재 시인은 지금도 시에 대한 강의를 나갈 때면 그 얘기를 전하곤 한다. 중학교 때는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에 이어지는 뒷이야기를 직접 쓰기도 했을 만큼 그의 문학에 대한 열정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고 있었다. 

“대학 다닐 때 등록금을 벌기 위해 잠시 쉬면서 대구 비산동에 있는 염색공장을 다닐 때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어요. 그때 이야기는 ‘첫눈’이라는 시에 나오는데 어린 시절의 상처나 어두운 편린들이 자주 시로 형상화되곤 했죠” 

권혁재 시인은 1992년 대학을 졸업하고 현대자동차에 공채로 입사해 현재까지 꾸준히 한 직장에 몸담고 있다.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시를 생각한다는 것이 자칫 안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 있을 때마다 사무실 근처에 있는 서점에 들르면 자신도 모르게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것이 문학 분야 서적인 것은 그가 어쩔 수 없는 타고난 글쟁이이기 때문이다.

 

엄격한 시 쓰기는 자신과의 약속
“공부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어요. 그래서 입사한 지 1년 만인 1993년에 아내 몰래 석사공부를 시작했죠. 그리고 몇 년 후인 2003년에 다시 박사과정에 도전했는데 그때 동기가 안도현 시인이고 1년 선배가 공광규 시인이에요. 그때 만난 시인들과는 지금도 교류하며 지내죠”

권혁재 시인은 석사공부를 할 당시 아내에게는 도저히 말을 꺼낼 수 없었다고 말한다. 경제를 책임져야 할 가장이 막상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말을 쉽게 꺼내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때문에 정작 아내에게 공부를 시작했다는 말을 꺼낸 것은 졸업식 당일이었는데 미안한 마음으로 전한 이야기에 아내는 놀라면서도 그때부터 남편의 든든한 지지자가 돼 주었다고.

“시가 쏟아져 나올 때도 하루에 2편 이상은 쓰지 않으려고 해요. 제 스스로 쉽게 시를 쓰는 건 아닌가하고 검열하게 되거든요. 지금까지 쓰던 것과 시의 패턴은 크게 바뀌지 않겠지만 11월쯤에 시집이 또 한 권 나올 예정인데 주로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시를 구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모든 세상이 변절하는 순간이 와도 본인만큼은 지금까지와 변함없이 일관성 있게 살아가고 싶다는 권혁재 시인, 홀로되신 어머니를 1주일에 한번 찾아뵈면서도 더 자주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이 못내 가슴 아프다는 권혁재 시인은 본인이 생각했던 작품이 원하는 대로 나왔을 때 가장 행복하고 시의 마지막에 방점을 찍을 때 성취감을 느낀다는 말을 전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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