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했습니다. 당시 선친께서는 한문이나 배우라고 말씀하시곤 했죠”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힘들었던 한 소년은 부모 몰래 고등공민학교에 입학해 학업을 시작하면서 배움에 대한 목마름을 달랬다.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 진학
이주상 평택시교육발전협의회장(71)이 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망을 가진 것은 이 같은 어린 시절의 갈증이 아직도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공민학교 1년 다니다가 내기초등학교 5학년으로 겨우 편입해 정규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에는 부모님이 반대해 2~3일간 설득한 끝에 쌀 한말을 얻어가지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을 했죠. 당시 경복중을 목표로 시험을 봤는데 그만 떨어지고 말았죠. 저 같은 촌사람이 넘보기는 힘든 벽이었던가 봅니다”
결국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 그는 안중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 시 서울에 재도전, 성남고등학교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해 꿈을 키워갔다. 그런 그에게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대학 3학년 때였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포함해 친구 3명이 모여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하자고 의기투합했죠”

대학 3학년 때 ‘상록재건학교’ 설립
무작정 고향으로 돌아온 이 회장은 당시 포승면사무소 회의실 한 칸을 빌려 ‘상록재건학교’라는 중학과정 야학을 시작했다. 포승지역은 배움의 기회가 적어 사람들이 몰려든 것은 당연지사. 결국 면회의실은 배우고자하는 학생들로 넘쳐났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할 상황이 왔다.
“한 독지가가 7000여 평의 땅을 기부해 주셨죠. 막상 땅은 구했는데 교실을 지을 마땅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남의 동네 산에 가서 아름드리나무를 몰래 벌목해오는 등 갖은 고생끝에 2칸짜리 교실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 회장과 지역을 사랑하는 청년들의 땀과 노력이 곳곳에 스민 상록재건학교는 이후 정식 학교인 포승중학교의 전신이 된다.
“지금도 당시 가르쳤던 졸업생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이곤 합니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지내고보니 평생 보람 있는 일 하나는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의원으로 무상급식 실현
평택문화원장을 비롯해 평택농지개량조합장, 평택시의료보험조합 대표이사, 평택시체육회 자문위원, 평택시장애인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한 이 회장은 2003년 제6대 경기도의원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한 후 7대에도 연임해 도의회 부의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임기 말에는 교육위원회에 속해 있으면서 당시에는 파격적인 무상급식론을 펼쳤다. 그것도 한나라당 소속 의원으로.
서민이 많은 읍·면지역은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에도 무상급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 현재 전면 무상급식이 실행되고 있는 점을 볼 때 교육에 대한 이 회장의 혜안이 돋보이는 점이다.

시 재정 5% 교육지원 이뤄낼 것
“평택시 재정의 3% 가량이 교육지원에 투입되고 있는데 이를 5% 까지는 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택시교육발전협의회에서 입법 청원을 해 시 예산 5%지원을 이끌어낼 생각입니다”라며 향후 협의회의 활동 목표를 밝힌 그는 현재 평택시가 처한 상황에 대해 ‘소통의 부재’라고 잘라 말했다.
“현재 평택은 발전의 호기를 맞고 있다고 봅니다. 모두 힘을 합쳐 이 기회를 살려야 합니다. 당 구분 없이 국회의원·시장·도의원·시의원이 먼저 발 벗고 나서야 하지만 아직은 미약하다고 봅니다”
“평택의 교육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어 아쉽다”며 “지난해 12월 ‘국제교육특구 지정’관련 특별법이 통과됨에 따라 평택시를 경기도 유일의 국제교육도시로 만드는 것에 남은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한 이 회장은 ‘평범하게 살지 말자’는 젊은 시절의 결심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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