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삶이 현재의 나를 있게 했어요”

 

컴퓨터 황무지 시대, 여성으로 도전
25년째 학원운영, 사명감으로 이어가

 

 
우리나라에서 컴퓨터 보급은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됐다. 당시는 모든 면에서 지금보다 부족했지만 30여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컴퓨터 기술과 정보통신 네트워크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급속도로 성장했다.

컴퓨터 초보, 강사에 도전하다
“80년대 중반 대학 전산학과에 들어가면서 컴퓨터와 인연을 맺었어요. 당시만 해도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지 않았을 때라 학과에도 여학생은 저를 포함해 두 명뿐이었죠. 전산학과에 들어가게 된 건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는데 그때 선택을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팽성읍에서 21세기정보처리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정희(48) 원장은 팽성에서 학원운영을 한 경력만 해도 25년이다.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을 중퇴하고 직접 생활전선에 뛰어들긴 했지만 그녀는 서울 대치동에서 컴퓨터 강사로 활동하며 컴퓨터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그때가 1987년경이었으니 당시 경력까지 합치면 그녀가 컴퓨터와 맺은 인연도 벌써 30여년이 된다. 그건 우리나라에 컴퓨터가 보급된 역사와도 비슷한 기간이다.
“당시는 컴퓨터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저 역시도 컴퓨터에 대해 잘 모르던 때였어요. 그래도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야 하니까 컴퓨터 언어나 프로그램, 데이터베이스 등을 책으로도 배우고 아는 사람들을 찾아가 가르쳐달라고 졸라가며 끈질기게 배웠죠. 그땐 정말 두려움 없이 도전했었네요”
이정희 원장은 배움에 관한 한 누구보다도 열정적이다. 발전을 거듭하는 컴퓨터의 변화 속에서 매번 새롭게 등장하는 것을 배워서 가르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배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열정은 결혼 후 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방송통신대학 과정을 통해서도 꾸준히 이어졌다. 
 
배움의 자세로 살아온 외길 30년
“큰아들이 돌을 막 지났을 때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팽성읍에서 학원 운영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학생 한명을 가르쳤는데 점차 학원생 수가 늘면서 자리를 잡게 됐죠. 주로 실업계 아이들이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이나 기타 자격증을 취득하러 많이 오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분야를 가르쳐달라고 해도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여기서 배우지 못하면 이 지역에서는 배울 곳이 없었으니까요”
이정희 원장은 팽성읍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동안 컴퓨터를 통째로 도둑맞기도 했고 시의원 출마를 선언한 남편을 내조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삶에 있어 가장 힘들었던 때는 학원이 한참 전성기를 누리던 18년 전, 20대 중반의 나이로 누나를 돕겠다며 학원차를 운전하던 남동생이 사고를 당해 세상을 등진 일이다.
“신앙이 제겐 가장 큰 힘이었지만 아무리 애써도 쉽게 훌훌 털고 일어설 수가 없었죠. 그래도 일은 해야 했으니까 울면서 가르쳤다는 표현이 맞을 거예요. 그 일은 지금도 제겐 가장 큰 아픔으로 남아있죠. 그때 외에는 살아가면서 아무리 큰 일이 있어도 크게 힘들어하지도 않고 매사에 두려움 없이 도전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이정희 원장은 40대 후반인 지금도 ‘합창’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선뜻 도전장을 내민다. 스스로 노래를 잘 못한다고 표현하는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는 것과 열심히 하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다는 말로 주변의 걱정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배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
“합창단에서 단원을 모집한다는 얘기에 선뜻 지원했어요. 합창은 서로가 마음을 한데 모으면 부족한 부분도 조금은 어우러져 갈 수 있고 또 제 스스로도 가르쳐주시는 대로 열심히 따라할 자신이 있어 마음 놓고 도전했죠. 못하니까 더 열심히 해야 했는데 그 덕분인지 얼마 전에는 무대에도 올라갈 수 있었어요”
이정희 원장은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선물처럼 늦둥이 막내딸을 가졌다. 현재 여덟 살인 딸 때문에라도 이제는 학원을 그만 두고 합창 같은 취미생활을 하며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들지만 그마저도 쉽게 그만두기가 어려운 건 학원을 운영하며 경제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준 지역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예전에 비해 학원생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팽성읍에는 컴퓨터학원이 없어서 만일 이곳이 문을 닫으면 배우려는 학생들은 모두 평택시내 쪽으로 나가야 해요. 그러니 지역에 또 하나의 컴퓨터학원이 생기지 않는 한 선뜻 그만둔다고 말하기가 어렵죠. 그때까진 단 한명의 아이들이라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가르칠 거예요”
컴퓨터 불모지였던 30여 년 전부터 현재까지 컴퓨터 외길인생을 살아온 이정희 원장, 여성들이 쉽게 도전하지 않는 분야에 당당하게 도전장을 내밀어 배움에 대한 열정 하나로 살아온 이정희 원장은 배우는 일에 끝이 있겠느냐고, 배우는 삶은 여전히 이어질 거라 말하며 활짝 웃는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