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벌어진 일들을 빨리 접하고 그 일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일에 있어 안타까움과 아픔이 함께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6년 전 제가 살던 동삭동에서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쌍용자동차 대량해고 사태로 인해 노동자들의 시위가 일어난 것이었지요. 당시 동네 사람들에게 그 현장은 두렵고 무섭고 위험했지만 집 바로 옆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니 꼼짝없이 목격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밖에 있던 사람들은 공장 안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물도 지급되지 않는다며 사람들에게 함께 물을 갖고 들어가자고 독려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그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고 시위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폭력처럼 안 좋은 이미지로 인식되곤 했으니까요.
 

그러나 많은 언론들이 이 현장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실이 유추되기 시작했고 나 역시 많은 해고자들이 자살을 택하는 동안 집회가 있던 서울과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회사의 입장과 노동자의 입장을 들었고, 해고자와 가족들이 전하는 눈물겨운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송전탑 위에서 벌어진 시위와 한겨울 굴뚝 위에서 했던 농성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왜 힘든 투쟁을 이어가야 하는지 그 절박함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난해 12월 30일, 드디어 해고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복직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물론 전원 복직이 아닌 단계적 복직이라는 조건을 달고 있었지만 그 합의에는 모든 것을 경제논리로 이어가는 기업이 한번 해고했던 노동자들을 다시 회사로 복직시킬 수 있도록 배려하고, 노동자들은 다시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신차를 파는 것으로 돕겠다는 상호 노력의 의미가 담겨 있어 반가웠습니다.
 

해고노동자들이 희망을 잃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이들이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작은 희망을 발견하는 일 같아 반가웠습니다.
 

노사 간 합의가 확정된 후 예전에 인터뷰를 했던 해고노동자의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혹시 그 가정에도 축하할 일이 있느냐고 말이지요. 안타깝게도 이번 대상에서 제외돼 더 기다려야 한다는 답장에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잠시 난감했습니다. 그리고 복직이 확정된 해고노동자들도 지금 나처럼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는 이 상황에 안타까워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부디 더 오래 기다리는 일 없이 빠른 시일 안에 모두 회사로 복직해 함께 기뻐하며 소주 한잔 나누는 시간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래 그들을 응원했던 기자로서 이번 협상타결 소식이 누구보다 반가웠던 것은 2016년 새해에는 노동자들이 울며 거리로 나올 때 짐짓 냉정한 척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다가 숨어서 몰래 울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내 스스로에 대한 안도감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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