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꿋꿋이 내 길을 갈 거예요”

 

전문 광고에서 ‘후미돛’ 제작까지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상 실력입증


 

 

젊다는 것은 도전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며 비록 몇 번의 실패를 거듭했다 해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빛나는 젊음의 특혜다.

스물네 살에 처음 사업 시작
“군대 제대 후에 달랑 컴퓨터 하나 들고 합정동 지하에서 캐릭터 명함을 만들어주면서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땐 사진을 보고 직접 그려서 명함을 만들었거든요. 학생들에게 그림도 가르쳤는데 실은 작업실로 구한 사무실 월세를 낼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이었어요”
동삭동에서 ‘보성광고’를 운영하고 있는 문성호(39) 대표는 스물네 살에 처음 사업을 접했다고 말한다. 수원과학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수원대학교 미술교육 전공으로 편입을 앞둔 시점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4학년 1학기에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학업을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어머니가 식당을 하면서 저희 삼남매를 키우셨는데 당시는 형도 대학생이라 여러모로 경제적인 여건이 좋지 않았어요. 학교에 다닐 때도 사실상 프리랜서로 신문사 홈페이지를 꾸며주는 일을 하다 보니 제 스스로도 공부보다는 일에 더 치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구요”
문성호 대표는 현재 운영 중인 보성광고 이전에도 여덟 차례나 사무실을 옮겼다고 말한다. 동업을 하다 월급도 못 받고 그만두기도 했고 서울 청담동에 있는 미용실에서 홍보를 담당하며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그러다 20대 후반에 평택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사업 제의를 받고 내려온 후 우여곡절 끝에 2005년 비전동에서 자신이 직접 ‘디자인유로’라는 광고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세상 속에서 힘들었던 시간들
“명함 편집 등을 주로 했는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처음부터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평택지역은 물론이고 안성과 송탄·용인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인쇄소를 돌아다녔어요. 그러니까 처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장님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그쪽 인쇄소에서 하지 못하는 칼라인쇄 같은 일들을 넘겨주기 시작했죠”
문성호 대표는 사업을 확장해 사업장을 옮기고 ‘유로기획’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당시 자신을 도와주겠다고 나선 친구와 동업 아닌 동업을 시작하면서 인생 최초로 바닥까지 내려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고 말한다. 신용불량자였던 친구 대신 사업자 대표를 자신명의로 했다가 친구가 내지 않은 부가가치세 때문에 자신까지 신용불량자가 되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원금에 이자까지 붙게 되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됐어요. 그때부터 지독하게 저축해서 빚을 갚아가며 조금씩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는가 싶었는데 그때 또 다시 사기를 당하게 된 거죠. 웨딩홀 건물 간판을 수주했는데 선금을 조금 준 뒤 공사가 95퍼센트까지 끝나갈 무렵 잔금을 주지도 않고 업자가 사라져버린 거예요. 미리 갖다 쓴 자재 값도 못 줬는데 그땐 정말 막막했죠”
문성호 대표는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조금씩 빚을 갚아나갔다. 밤잠 안자가며 부지런하게 일하는 것은 이런 상황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몸에 밴 습관이다. 결국 5년 전쯤 모든 빚을 갚고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났지만 당시의 일들은 그의 인생에서 큰 경험이자 어떤 험난한 일들과 부딪혀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큰 삶의 자산으로 남았다.

가족, 소중한 생의 선물
“지금도 결혼하기 1년 전에 의료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요. 아버지는 시간만 나면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여행을 많이 가곤 하셨는데, 제가 어른이 된 후 제가 번 돈으로 아버지 모시고 여행 한번 가지 못한 게 가장 가슴 아프죠. 아버지처럼 저도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가장 힘들 때 곁을 지켜준 아내와 두 딸이 제겐 가장 큰 힘의 원천이죠”
문성호 대표는 마음의 여유를 조금 갖게 되면서부터 자신이 하고 싶었던 미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힘든 시절을 함께 해준 아내와 두 딸에게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한 만큼 덥석 자신만의 소망을 행동으로 옮기기엔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미술을 전공했지만 그동안은 사실상 그림을 그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그러다 얼마 전 세월호 때 영감을 얻어 스케치해놓았던 그림이 대한민국미술대전 판화부문에서 입상을 하게 됐죠. 그때부터 다시 그림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얼마 전, 자신의 유일한 취미였던 낚시를 통해 배의 후미에 돛을 달아 방향을 잡아주는 ‘후미돛’으로 특허출원을 냈다는 문성호 대표, 빠르면 올 2월경에 특허를 받게 되면 그림을 그리면서 돛 만드는 사업을 할 생각도 하고 있다는 그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며 다음 일정을 위해 부지런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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