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을 잃은 후 사랑을 알았죠”

 

볼 수 없어도 기적 같은 하루하루 감사해
내 꿈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용기 주고파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불행과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놀람과 절망, 분노와 체념의 전형적인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후는 개인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여전히 체념의 순간에 머물지만 또 누군가는 그 체념을 딛고 일어서 새로운 기적을 낳기 때문이다.

30대 중반, 갑자기 찾아온 시련
“처음엔 눈이 침침해져서 피곤한가보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점점 사물이 보이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망막세포변성증이라는 희귀병이라고 하더군요. 그 뒤 일 년도 안 돼 시력을 모두 잃었어요. 그때 내 나이가 서른다섯이었죠”
스물한 살 이른 나이에 결혼해 남매를 낳고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김연희(46) 씨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덮쳐온 불행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한다.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공포였고 그런 삶을 사는 인간은 세상 속에서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남편과 이혼을 하고 한참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마저 남편에게로 보내야 했다.
“세 번이나 자살시도를 하면서 신을 원망하던 그때, 어느 날 문득 건강했을 때 왜 더 많이 사랑하며 살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더라구요. 그중에서도 내 자신을 사랑해본 적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내 자신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그런 생각으로 며칠을 밤새워 울다 결심했죠. 이제 사는 동안만이라도 나 자신을 사랑하며 살겠다구요”
김연희 씨는 그때부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고 말한다.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는 우선 어두운 세계에 적응해야 했는데 그때 알게 된 곳이 바로 수원 인계동에 있는 시각장애인재활학교다.

40대 중반에 새롭게 찾은 삶
“매일 흰 지팡이를 짚고 수원까지 다니며 점자도 배우고, 적응법도 배우고, 안마사 자격증도 땄어요. 그런데 아무리 적응하는 법을 배워도 매번 혼란스러워요. 후천적인 시각장애인들은 어두운 세계에 적응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거든요. 어느 날인가는 길에서 방향을 잃고 헤맨 적이 있는데 그때 길을 알려준 사람이 바로 지금의 남편이에요”
동갑내기인 김연희 씨와 이태웅 씨는 운명처럼 그렇게 만났다. 사업실패로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이태웅 씨는 힘든 가운데서도 밝게 웃고 있는 그녀를 보며 위로와 호감을 동시에 가졌고 그것이 인연이 돼 친구로 지내오다 지난해에 결혼식을 올리고 신장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2007년에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장애인가요제에 나가게 됐는데 거기서 최우수상을 받게 됐어요. 제가 예전부터 노래를 참 좋아했거든요. 2014년에는 오산시에서 했던 전국노래자랑에 나가 대상을 받았고 그때 저를 눈여겨봤던 작곡가 송광호 선생님의 도움으로 지난해 11월에 첫 정규앨범을 내고 정식가수로 데뷔하게 됐죠”
김연희 씨는 여기저기 무대에서 노래봉사도 하고, 경기시낭송협회 회원으로 좋은 시들을 암기해서 시낭송도 하고 있다. ‘오하라’라는 예명을 ‘다섯 가지를 하라’는 것으로 생각해 ‘감사’ ‘사랑’ ‘행복’ ‘겸손’ ‘노력’하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그녀는 얼마 전부터는 자신의 이야기가 힘이 된다는 사람들을 찾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강의도 한다.

살아있는 모든 삶이 기적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모든 것들이 감사하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고 일어나는 것까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제겐 모두가 감사한 일이죠. 기적은 물 위를 걷는 것만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것들이 전부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김연희 씨의 한쪽 눈은 아직 빛이 있을 경우 밝다는 것 정도를 인지할 수 있다. 때문에 그녀는 대낮에도 방 안에 불을 켜 두고 그 불빛 아래 앉아있는 것을 즐긴다. 일반인에게는 일상인 그 일이 그녀에게는 또 하나의 감사함인 것이다.
“얼마 전부터는 피아노와 춤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될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뭐든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알게 된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타인도 사랑할 수 없다는 거였으니까요”
자신의 곁에서 눈이 되어주고 손과 발이 되어주며 그녀를 아기처럼 돌봐주는 이태웅 씨, 그리고 그에 화답하듯 자주 사랑한다 말하며 활짝 웃어주는 김연희 씨, 그들에게서는 평범하지만 소소한 일상의 행복들이 듬뿍 묻어난다. 그것은 모든 것에 감사함을 갖게 된 그녀가 삶 속에서 찾아낸 빛나는 보석 중 하나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