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조금 더 의미 있게 살아야죠”

 

문화·예술, 봉사로 다져온 60평생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하고 싶어

 

 

역사가 E.H.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한다. 그것은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이해할 수 있으며 과거는 단지 지나온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만드는 실체라는 말과도 같다.

보람에서 이어진 외국인 쉼터
“평택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8년을 근무하던 아내가 작년에 퇴직을 했어요. 그런데 아내와 가깝게 지내던 외국인들이 계속 아내에게 상담을 해오는 거예요. 결국 그들을 더 돕고 싶다는 아내의 뜻에 따라 노후에 우리가 살려고 마련해둔 집을 작년 3월부터 리모델링해서 외국인노동자힐링센터를 만들게 됐죠”
청북면 율북리에서 ‘평택외국인노동자힐링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황창용(59) 대표는 사회복지사이기도 하다. 1급 자격을 갖추고 평택지역의 다양한 복지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온 그가 자신들의 살 집을 외국인들을 위한 쉼터로 마련한 건 아내의 의지가 가장 많이 작용했다.
“아내는 만4년 동안 휴가 때마다 자비로 외국인노동자들의 나라에 가서 비디오나 사진으로 그들의 소식도 전하는 역할을 했어요. 그들을 조금이라도 더 돕고 싶은 게 아내의 소망이거든요. 사실 이곳에서는 저보다 아내가 더 인기가 많아요”
편안한 살림집 형태를 갖춘 외국인노동자힐링센터는 2015년 7월부터 외국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네팔인 1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누가 센터에 오든 가족 같이 편안하게 쉬었으면 하는 것이 황창용 대표의 가장 큰 바람이다. 그리고 그런 그를 가장 믿고 지지하는 것은 바로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것을 지향하는 그의 아내 박연순 씨다.

신앙에서 이어진 사회복지사
“아내와도 신앙으로 만났어요. 현재도 신앙을 우리 부부의 가장 큰 믿음으로 갖고 있죠. 결혼 20주년에는 여행이나 선물 대신 아내와 함께 스튜디오를 빌려 직접 부른 찬송가와 성가를 담은 CD를 제작해서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는데 그건 지금 생각해도 참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황창용 대표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클래식기타를 치며 낭만적인 학창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음악적 기질은 신앙에 접목 돼 성가로 이어졌고 2002년에는 순수 아마추어 남성들이 모인 소사벌남성합창단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학과 음악을 좋아하는 예술가 기질의 그가 사회복지사로 일하게 된 건 그의 인생에서 일찍이 큰 고비를 넘기고 난 이후부터다.
“군대에 있을 때 난로가 폭발해 신체의 35프로 정도 화상을 입은 일이 있어요. 병원으로 실려가 3개월을 치료받았는데 정말 기적같이 나았죠. 당시는 정말 힘들어서 자살까지도 생각했었는데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어요. 아마도 그때부터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신학을 전공한 황창용 대표는 군 제대 이후 10여 년간 평택 시내에서 기독교 서적을 파는 기독서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사회복지사로 나서게 됐다. 사람을 돕고 봉사하는 것이 그의 삶의 철학에 가장 부합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탁구에서 이어진 지역 봉사
“저와 아내 모두 사회복지사 1급 자격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서로 이해하는 부분도 많고 통하는 부분도 많죠. 제가 정신장애인 가족들이 모이는 ‘정신보건가족협회’에서 13년간 회장을 맡았던 것도, 평택시발달장애인센터에서 3년 동안 센터장을 맡았던 것도, 내가 좋아하는 탁구로 매일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더 큰 보람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아내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덕분이에요”
황창용 대표는 평택지역에 처음으로 탁구연합회를 만들어 사무국장을 맡았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탁구로 11년째 정신장애인의 운동치료로 탁구를 가르치고, 3년 전부터 법원과 복지관 어르신들에게 탁구를 가르치며 봉사하고 있다. 그가 탁구를 통해 봉사를 이어가는 가장 큰 이유는 탁구가 사람의 인생과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탁구를 치는 동안 제 모난 성격이 많이 순화되는 걸 느껴요. 탁구는 상대방보다 잘 친다고 나 혼자 두 번 칠 수도 없고 내가 먼저 사납게 공을 보내면 돌아오는 공도 사납게 돌아오죠. 조금은 손해 보는 마음으로, 서로 박자를 맞춰 주고받을 때 더 좋은 게임을 할 수 있듯이 우리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요?”
결혼 후 처음으로 손에 쥐게 된 적금 천만 원을 동생에게 주겠다고 선언했을 때 빠듯한 생활에도 선뜻 동의해준 아내의 마음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는 황창용 대표, 현재 운영하는 외국인쉼터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아내와 함께 네팔에 가서 NGO단체를 만들고 싶다는 황창용 대표는 항상 자신에게 많이 양보만 해온 아내에게 이제 남은 인생은 자신이 더 잘 해줘야겠다며 서툰 표현으로 그동안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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