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이웃돕기, 평생 꿈 이뤘어요”

 

서정동주민센터에 성금 1000만원 기탁
가난했던 시절, 어려운 이웃 마음 알아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시민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가진 것을 나누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행을 베푸는 것은 그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기 때문이 아닐까.

칠순에서야 이룬 이웃돕기 꿈
“육십이 되던 해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 형편도 어려우니 마음이 있어도 당장 그럴 수는 없었고 그래서 매월 10만원씩 10년 만기 적금을 들었죠. 올해가 칠순인데 해를 더 넘기기 싫어서 7년째에 적금을 깨고 모자란 금액을 보태서 천만 원을 기부하게 된 거예요”
서정동에 거주하는 김성일(69) 어르신은 지난 3월 15일에 서정동주민센터를 찾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성금 1000만 원을 기탁했다. 어린 시절 궁핍하게 자랐고 결혼 후에도 다섯 남매를 키우며 가난하게 살아야 했던 김성일 어르신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선뜻 내놓은 이번 성금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큰 아들이 다섯 살 때 급체를 해서 병원에 데리고 갔었는데 병원비 낼 돈이 없어서 그냥 데리고 나왔다가 이틀 만에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어요. 큰 딸아이가 겨울용 부츠를 여름까지 신고 다녀도 신발 사줄 돈이 없었죠. 죽은 아들은 가슴에 묻었지만 지금도 큰딸의 발만 보면 그때 생각이 나서 가슴이 아파요”
김성일 어르신의 가슴 속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자신처럼 가난 때문에 가슴 아픈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다리며 살아왔지만 그 역시 가난했기에 그 소망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일흔의 나이가 되어서야 그 오랜 소망을 이룬 셈이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감사함
“네 살에 6.25한국전쟁을 겪었는데 그때도 살아남았으니 나로서는 살아있는 것 자체가 감사함이에요. 다섯 아이들도 모두 제 밥벌이는 하도록 잘 키웠으니 남은 인생은 덤으로 사는 거라는 생각도 들구요. 아내는 아직도 서정리역 인근 노점에서 과일 장사를 하는데 내가 기부를 한다고 했더니 아내가 저보다 더 좋아하더라구요”
김성일 어르신은 1980년 10월 전주에서 평택으로 이사를 왔다. 미군부대가 있는 평택에서는 먹고 살 걱정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미군부대 내에서 청소도 하고 야채나 과일 행상도 하며 생활을 꾸려갔지만 평택에서의 삶도 그리 녹녹치는 않았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어요. 참예수교회 교단 내에서 신학공부를 했고 이후부터는 목사로 전국에 있는 교회를 돌아다니며 설교를 해야 했는데 덕분에 가정생활은 고스란히 아내의 몫이 되었던 거죠. 생활에만 몰두해도 부족했을 그 시절에 남편이 외지로만 돌아다녔으니 다섯 아이들을 건사하고 생활까지 책임져야 했을 아내 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김성일 어르신 부부는 힘든 와중에도 다섯 자녀들을 모두 대학까지 보냈다. 그리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끝까지 가르쳤던 아들은 현재 호주에 있는 일본계 회사에서 기술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다. 언젠가 아들의 공부방 벽에는 ‘부모님의 피와 땀으로 내가 공부하는 것’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착하게 잘 자라준 자녀들은 부부의 가장 큰 보람이다.

남은 인생, 봉사하며 살고파
“아버님은 늘 제게 손에 쥔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니 조금이라도 가진 것이 있으면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어머니는 아무리 속이 상해도 원한을 품지 말라고 가르치셨죠. 저는 지금도 부모님의 그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고 있고 제 아이들에게도 그 가르침을 그대로 가르치고 있어요”
김성일 어르신은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교회에 봉사하는 것, 그리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도 65세가 되어서야 겨우 집을 장만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리 살려고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 아무리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 부부가 이 세상을 떠난 뒤 자식들이 부모를 기억할 때는 가난해도 뜻 있게 살다 가신 분들이라고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바라는 건 그것뿐이에요. 그게 우리 부부에게 남아 있는 가장 큰 소망이죠”
서정동주민센터는 어르신이 기부한 성금을 법적·제도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복지사각지대 저소득층 20가구에 매달 5만원씩 10개월간 지원할 예정이다. 소외받는 이들에게 10여년을 키워온 사랑의 결실을 선뜻 전한 김성일 어르신, 자신보다도 많이 배운 사람들이 베푸는 삶을 산다면 이 세상이 조금 더 밝은 사회가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는 김성일 어르신은 3월 26일 칠순잔치를 앞두고 자신에게는 이번 기부가 무엇보다 큰 선물이라며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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