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가족 위해 끝까지 일할거예요”
 

35년 구두장이, 브랜드에서 명품까지
파킨슨병, 그래도 기술이 있어서 행복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 푸쉬킨

19세의 가난한 청년 구두장이
“열여덟 살에 고향인 전북 임실에서 성남으로 올라왔어요. 가난한 집이어서 농사짓느라 가고 싶은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죠. 그리고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 ‘에스콰이어’ 본사에 입사해 10년 동안 기술을 배웠어요. 이후에는 엘칸토에도 있었고 군화 제작하는 곳에도 있었는데 주로 선배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거절을 못해서 직장을 옮기곤 했죠”
합정동 산림조합 옆 공터에서 작은 구두수선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한경무(53) 씨는 우리나라 굴지의 신발업계에 두루 몸담은 베테랑으로 35년간 현장감독에서부터 해외 현지  기술 지도까지 다양한 경험을 갖춘 그야말로 ‘구두장인’이다.
“1993년에는 중국에 파견돼 현지 사람들에게 구두제작 기술 지도를 했고 ‘엘칸토’가 평양에 진출하고 있던 1999년에는 북한에 파견돼 한 달 동안 북한 사람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기도 했어요. 그리고 2008년부터는 미얀마에서 지내며 기술 지도를 했는데 2년 전에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걸 발견해 귀국하게 됐죠”
한경무 씨는 해외에서 몸이 아플 때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족들에게는 차마 알리지 못하고 약을 먹으며 혼자 끙끙 앓곤 했는데 떨림 증상이 심해지고 마비가 오는 등 증상이 심해지자 결국 가족에게 알리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리고 귀국 후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파킨슨병’이었다고.

50대, 불시에 찾아온 파킨슨병
“처음엔 증세가 호전되는 걸 보고 다시 미얀마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병이 있으니 회사에서 거절하더군요. 회사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싫고 해서 회사로 돌아가는 건 포기했어요. 이후 ‘닥스’ 신발 만드는 곳에서 와달라는 요청이 있어 잠시 일했는데 오른쪽 마비가 다시 재발하면서 결국 그곳도 그만두게 됐죠”
한창 일할 나이에 치유가 어려운 병을 선고받은 한경무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묻자 차마 설명하기 어려운 듯 잠시 말문을 닫는다. 그리고 한참 뒤,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아내에게 정말 미안하다”였다. 평소 표현을 잘 안한다는 그의 얼굴은 누가 봐도 금방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미안함으로 가득 차 있다.
“아내도 다리가 불편하고 작년에 신장을 하나 떼어내서 사실상 일하기가 어려운 상태거든요. 그래도 나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는 걸 보면 정말 미안하죠. 아내도 제게 일하라는 말을 못하고, 저 역시 아내에게 일을 그만두라는 말을 못하고, 서로의 마음만 헤아릴 뿐이죠. 아내가 그동안에도 고생을 많이 해서 이제 편히 쉬게 해줘야 하는데, 저까지 덜컥 아프게 되니 미안한 마음을 뭐라 표현할 길이 없죠”
한경무 씨는 몸이 아파도 그냥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말한다. 아직 대학에 다니는 두 딸이 있고 이제 중학교 다니는 막내아들이 있으니 큰 도움은 못되더라도 아직은 조금이라도 더 벌어서 뒷바라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구두수선, 가족위해 일할 터
“젊을 때는 구두 일을 다신 안하겠다고 버틴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회사에서 불러주고 잡아주는 사람들이 있어 꾸준히 할 수 있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끝까지 기술을 배울 수 있어서 참 다행이구나 싶어요. 이 기술이라도 없었다면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테니까요”
한경무 씨는 현재 비전2동사무소 맞은편 합정동 평택시산림조합 옆에 있는 작은 컨테이너박스에서 구두수선 일을 하고 있다. 다행히 맘씨 좋은 땅주인의 배려로 그곳에 건물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일할 수 있지만 이후의 일은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시작한 지 이제 5개월째, 아직 가정생활에 보탬이 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는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한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바르게 잘 자라준 아이들이 무엇보다 가장 고맙고 감사하죠. 위로 딸 둘은 대학에 들어가서야 휴대폰을 사줬고, 막내아들 친구들은 전할 일이 있으면 제 아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는데 그래도 불평 없이 잘 따라주니 고마울 밖에요”
돈 못 버는 남편인데도 늘 곁을 지켜주는 아내에게 고맙고, 착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이 고맙고, 그런 가족을 위해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한경무 씨, 사진을 찍기 위해 구두를 든 오른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으나 빵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면서도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그는 여전히 한 가정을 책임지는 든든한 가장의 모습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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