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각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죠”

서각 30년, 어릴 때부터 나무와 함께 해
끊임없는 창작욕구, 색다른 작품 ‘수두룩’

 

 


 

사랑하는 부부가 서로의 모습이나 습성을 닮아가듯, 좋아하는 것을 닮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나무를 좋아해서 오래 함께 해온 사람이 나무의 천성을 닮아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20대, 스승에게 배운 서각의 禮
“아버지가 제재소를 하셔서 어려서부터 나무와 함께 살았어요. 덕분에 팔남매 형제 대부분이 목각을 하고 있죠. 셋째형님은 일본으로 수출하는 불상이나 현판, 서각을 만들었는데 어려서부터 형님 일을 도우며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이 많았어요. 20대가 되면서부터는 내가 제일 잘한다는 자신감이 생겨 국내 서각장들을 찾아다니기도 했죠”
나무와 함께 평생을 지낸 전유종(56) 서각장은 당시를 ‘치기어린 시기’라고 말한다. 중앙대학교 공예과를 졸업하고 안성에 ‘쌍곡공방’을 차린 그는 국내에서는 자신이 제일이라는 자신감에 충만했고 공방운영 2년 만에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홀연히 일본으로 향했다.
“시모노세키에 유명한 서각장이 있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그분을 찾아갔는데 자신이 하는 일을 지켜보라는 허락을 받고 그분 집에서 8개월을 지냈어요. 찾아가 실력을 겨루려던 제 결심은 첫날부터 여지없이 깨져버렸죠. 한눈에 봐도 그분은 저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분이었으니까요. 가져간 조각도를 꺼내보지도 못하고 돌아왔지만 그때 배운 것은 바로 나무를 대하는 예의였어요”
전유종 서각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자신의 오만함을 깨우치던 스승의 가르침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당시 일흔이 넘은 스승은 아직도 자신의 작품에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며 매일 새벽에 일어나 끊임없이 작업에 몰두했고 ‘기술은 나중에 배워도 되지만 예의를 갖추는 것은 그보다 앞서 배워야 한다’는 가르침을 그에게 일깨워 주었다고.

더 넓은 세상에서 배운 깨달음
“제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때부터 10년을 계획하고 목각으로 유명한 필리핀·말레이시아·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10개국을 돌아다녔죠. 우연한 기회에 사촌형님의 소개로 미국 컨트리가수 케니 로저스의 저택에서 한 달을 머물며 흑단나무로 조각상을 새기기도 했고 호주 주재 한국대사의 초청으로 호주에서 조각을 하며 3년을 보내기도 했어요”
전유종 씨의 결심은 동생의 결혼으로 인해 귀국하며 5년 만에 깨졌다. 그리고 안성에서 만난 여인과 결혼해 평택 소사동에 정착하게 되면서 다시 호주로 돌아가겠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막상 결혼을 하니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고집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2년 정도는 공사현장을 다니며 돈을 벌었고 돈이 좀 모이자 송탄 퓨리나사료 옆 가게를 얻어 공방을 운영했죠.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현재 있는 자리를 알게 돼서 지금까지 공방을 운영하게 된 거예요”
전유종 서각장은 그동안 자신의 작품에만 몰두해 왔으나 3년 전부터는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유독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그가 제자들을 가르치겠다고 결심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결심을 굳힌 현재는 자신의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쏟아 붓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나무와 함께 물 흐르듯 살고파
“내가 스승님에게 배웠듯이 기본을 바로 세우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그 기본을 충실히 배울 자세만 되어 있다면 내 안에 있는 것을 모두 다 가르쳐야죠. 부디 제자들이 나를 뛰어넘어 더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현재의 제 바람이죠”
전유종 서각장은 2005년 목각장승조각부문의 경기으뜸이로 선정되기도 했다. 경기도박물관 내에 있는 높이 4미터 장승 2쌍도 그의 작품이고 그가 만든 영월 배꼽 장승은 방송을 타면서부터 명소가 됐다. 충남 보령농업박물관, 파주 통일로변 등 전국 곳곳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지만 정작 그는 인터뷰 도중에도 그런 얘기는 없이 현재 구상 중인 새로운 서각 작품 설명에 더 열을 올린다.
“서각은 죽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에요. 내가 발견해서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시키는 거죠. 그 작품을 소장하는 사람이 귀하게 여겨주면 그 나무는 평생을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게 되는 거구요. 돈을 많이 못 버니 아내에게는 늘 미안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이고 이곳에만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니 어쩌겠어요”
요즘은 버려진 밥상이나 기타에도 서각을 해서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시키는 일을 즐긴다는 전유종 서각장,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상상을 초월하는 작품들을 구상하고 있다는 그는 얽매이는 일 없이 물 흐르듯이 살고 싶다고 말한다. 나무를 닮은 듯 순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새로운 작품에 눈빛이 빛나는 그의 모습은 타고난 예술가의 모습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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