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있어 행복한 무대 조력자죠”
 

음악하며 살고 싶은 게 평생의 꿈
최상의 소리를 위해 오늘도 매진

 

 

별이 아름다운 건 까만 밤하늘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밤하늘이 어두울수록 별은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법, 그러나 우리는 별만 보느라 그 별의 배경이 되는 밤하늘은 잊는 경우가 많다.

어릴 적 꿈이 직업으로 이어져
“중학교 때 친구가 가진 LP판을 빌려 들으면서 음악을 좋아하게 됐어요. 고등학교 때는 방송부를 했는데 전교생이 조회하러 운동장에 나갔을 때 혼자 방송실에 앉아 있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죠. 그때부터 음악은 제 꿈이 됐어요. 직접 음악을 하면서 살면 더 좋겠지만 그러기엔 내 한계를 알게 됐고, 대신 음악과 관련한 일을 찾은 것이 음향이었죠”
고향인 팽성읍 신궁리에서 ‘시드사운드’라는 음향전문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박종훈(42) 대표는 어느새 음향분야에 20여년을 몸 담아온 베테랑이다. 20대부터 전국의 행사나 공연을 돌아다니며 음향은 물론 무대·조명까지 다양한 경험을 해온 그는 단순한 음향기술을 떠나 각 분야마다 최상의 소리를 찾아내는 실력 있는 전문가로 우뚝 섰다.
“처음 음향 일을 시작했을 때는 무대 위에서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어요. 그렇게 익힌 경험이 지금까지도 제 일에서 어떤 분야든 겁내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곤 하죠. 국악에는 유난히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는데 그 역시도 초창기 음향회사에 다닐 때 칠순잔치에 투입됐다가 국악인이 흥을 돋우며 소리하는 것을 본 것이 발단이 됐어요”
박종훈 대표가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음향과 무대기술은 평택에서 진행되는 대부분의 축제나 공연에서도 십분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평택농악이나 평택민요보존회 공연에는 남다른 애정으로 온 마음을 집중하는 조력자가 되곤 한다고.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엄격한 분야
“무대에서 일어나는 일은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만큼 음향 엔지니어에게 실수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에요. 음향이 실수를 하는 순간 모든 공연은 엉망이 되어버리거든요. 그래서 공연 할 때마다 항상 신경이 바짝 곤두서곤 하죠”
박종훈 대표는 공연장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도 반갑게 이야기 나눌 수도 없는 입장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공연장에서 신경 못 쓰는 건 이제 고작 여섯 살인 사랑하는 쌍둥이 아들·딸이 와도 마찬가지다. 공연이 있는 주말에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의 특성 상 아내와 아이들이 직접 공연장을 찾기도 하지만 최상의 공연을 책임지고 있는 그는 아내나 아이들에게 신경써줄 여력이 없어 마음이 아프다.
“음악을 틀어줄 때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있으니 행복하고 각각의 악기와 조화를 이루는 최상의 소리를 만들어낼 때는 전문가로서 희열을 느껴요. 만일 가야금과 꽹과리가 협연을 한다면 각각의 악기 특성이 조화를 이뤄서 관객에게 들려져야 하니 연주자들보다 악기에 대해서도 특성이나 소리의 주파수 등 더 많이 알아야죠”
평택의 국악공연을 도맡다시피 해온 온 박종훈 대표는 이제 평택농악과 평택민요보존회 공연에서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팀원이다. 이들 단체가 평택에 존재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무대공연의 발전상을 꿰뚫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발전을 거듭할 때마다 더 좋은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 역시 함께 호흡하고 연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음향은 기계+소리+사람의 조화
“음향을 연구하다 실력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가 가장 힘든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소리 그 이상을 못 이끌어 내거나 제대로 구현하지 못할 때가 있거든요. 단순한 음향기술자가 아니라 모든 악기의 조합, 그것으로 들려주는 최상의 소리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박종훈 대표는 이제 자라섬재즈페스티벌 같은 국내의 굵직굵직한 무대에서 음향을 맡기도 하고 공연 중 어떤 일이 생겨도 능수능란하게 대처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에게 주어지는 자신에게 주어진 무대에서 최상의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미국 록밴드 ‘토토’가 그들의 마지막 공연을 위해 세계투어를 하다 우리나라에 왔을 때 모든 멤버들을 관객에게 차례로 인사시켰어요. 그리고 맨 마지막에 자신들의 무대를 40년 동안 써포터해 준 음향 전문가를 소개했는데 무대 뒤에서 백발의 노인이 걸어 나오는 거예요. 비록 관객에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에게는 가장 멋진 음악을 관객에게 들려준 또 하나의 멤버였던 셈이죠”
처음 음향 일에 뛰어들 땐 단순히 기계를 잘 다루고 싶었다는 박종훈 대표,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음향도 단순히 기계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해내는 일인 만큼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박종훈 대표는 이제 누구에게도 표현을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무대 뒤의 숨은 조력자, 가장 완벽한 무대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그의 모습이 왠지 산처럼 든든하게 느껴진다.

적성과 안 맞았던 유치원 교사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는데 유치원 교사로 1년여를 근무한 뒤 사직서를 냈어요. 부모님을 포함해 많은 주변 사람들이 왜 좋은 직업을 그만 두느냐고 만류했지만 어차피 저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으니 하루라도 빨리 포기하는 게 낫겠다 싶었거든요”
비전동 재홍분식 옆에서 카페 ‘휴휴’를 운영하고 있는 이지영(30) 씨는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여성창업주다. 막연히 아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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