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에도 철학은 살아있어야죠”
 

로컬푸드·공무원학습동호회 보람 커
변하지 않는 것 변하도록 만들어야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머물러 있는 자리에서 빛을 발할 때가 아닐까.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그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고 늘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새로움을 꿈꾸는 농촌지도사
“농촌을 새롭게 바꾸는 지도사가 되고 싶었는데 대학 다니던 무렵에 그만 농촌지도직 시험이 없어져버렸어요. 다른 친구들은 전과를 하거나 사기업에 취직을 했는데 전 도저히 꿈을 버릴 수가 없었죠. 그래서 고향인 전주에 내려가 4년 동안 부모님을 대신해 농사를 지으며 그동안 생각했었던 다양한 농사법들을 실험했고, 농촌지도직 시험이 부활된 뒤 1996년 처음 평택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이우진(49) 평택시농업기술센터 지도기획담당 농촌지도사에게는 서울대학교 농대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늘 붙어 다닌다. 그러나 그런 꼬리표 못지않게 그를 따라다니는 것은 ‘열린 마인드’ ‘노력하는 공무원’이라는 수식어다.
“2008년에 완주·원주·서천·평택에서 같은 고민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 한 달에 한번 워크숍을 하면서 정보를 교류하며 로컬푸드 시스템을 만들어냈어요. 생산자를 모으고 소비자를 교육하며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사회적 거리를 줄여야 지속가능하리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것이었죠”
이우진 농촌지도사는 조례를 만들면서 활발하게 움직이던 당시를 떠올리며 사뭇 진지해진다. 공직에서는 모든 것이 절차에 따라야 하는 것인 만큼 개인의 뜻대로 이뤄지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새로운 사안들을 고민하고, 대안을 만들어내고, 실행에 옮긴다.

만화가의 꿈, 현실에서도 이어져
“로컬푸드에서 이어진 것이 체험농장과 도시농업이었어요. 체험농장은 평택에 40여개나 마련됐고 농장 대표들로 구성된 체험농장연구회도 만들어졌는데 아이들이 직접 텃밭을 가꾸고 농사를 지으며 농업과 친해지게 하고 평택에 적합한 소비자교육을 만들어가는 생각이었죠”
새로운 것들은 공상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이우진 농촌지도사는 그런 것들이 모두 중학교 시절부터 만화가를 꿈꿔온 덕분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농가 홈페이지에 삽입될 캐릭터를 만드는 일도, 농업 행사가 있을 때 한 달 동안 밤을 새워가며 닭·오이·쌀 등 사람 키보다 큰 캐릭터를 만드는 일도 모두 그의 몫이었다. 중학교 때 이미 직접 그린 그림으로 동화책을 만들기도 했던 그는 그러나 정작 청년이 된 이후부터는 시를 쓰는 일을 즐겼다.
“5남매 중 장남이었는데 내가 대학에 가게 되면서 가정형편상 여동생 둘은 정규 고등학교가 아닌 야간고등학교에 다녀야 했어요. 그게 늘 마음이 아팠는데 당시 그런 마음들을 담아 일기처럼 시를 썼죠. 그런데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그는 모든 사회적 문제들을 생각하는 데는 철학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사고가 있을 때 모든 현상이 하나의 문제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다양한 측면에서 해결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다른 공직자들과 함께 공부하는 ‘온누리학습동호회’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

‘나’ 아닌 ‘타인’을 인정해야
“2007년에 평택시에서 새로운 사업들을 발굴하기 위해 공직자들에게 매주 역량강화 교육을 시킨 적이 있어요. 당시 저는 농업분과에서 미래의 평택을 그리는 일을 연구했는데 당시 얻은 아이템들이 정말 많았죠. 그때 한 일들은 이후에도 조금씩 변형돼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데 당시 그 교육의 맥을 끊지 않기 위해 뜻이 맞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 ‘온누리학습동호회’예요”
그는 농촌지도사의 역할은 농업인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자세를 갖게 하는 것, 소비자를 통해 농업인을 바꾸고 농업인을 통해 소비자의 생각을 바꾸는 일들은 그가 꿈꾸는 농업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떤 일을 대할 때도 이 일을 꼭 해야 하나, 안하면 안 되나, 처음에는 왜 하려고 했을까 등등 근본적인 것들을 생각해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만이 현재 우리에게 맞는 일들을 창조해 낼 수 있으니까요. 그런 것들은 모두 ‘타인’을 인정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일이죠”
부부 공무원으로 아내와 같은 고민을 나누면서 친구로 나이 들 수 있어 행복하다는 이우진 농촌지도사, 농업인에게 변화를 제안하고 그 변화를 실현해가는 농민들을 바라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공직자의 위치에 있는 만큼 앞으로도 더 많은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뛰겠다는 다짐을 전한다. 일상의 소소함 가운데 철학이 있는 삶을 꿈꾸는 그의 모습이 잔잔하지만 큰 파장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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