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불편하지만 뭐든 할 수 있어요”
 

주경야독 5전 6기, 고졸 검정고시 합격
한국복지대 입학 후 사회복지사 되고파


 

 


 

장애인을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편견 속에서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기회, 그리고 불편한 몸을 감안한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음을 보여준 한 남성이 있다.

중졸 이어 고졸까지 검정고시
“날 때부터 뇌 병변과 언어장애가 있었어요. 어려서는 지금보다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더 힘들었죠. 열 살 무렵까지는 가족들과 함께 살았는데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족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야 했어요. 저도 그때부터 가족과 떨어져 혼자 시설에서 생활해야 했죠”
2016년도 제1차 고졸 검정고시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이재성(49) 씨는 타인이 쉽게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열심히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끝까지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면 종이에 단어를 써서 이해시키려 노력한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인터뷰가 무르익을수록 그의 이야기는 조금씩 쉽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중졸 검정고시는 다섯 번 만에 합격했고 고졸 검정고시는 여섯 번 만에 합격했어요. 영어가 제일 쉬웠고 수학이 제일 어려웠죠. 영어는 80점을 맞았는데 경기도에서 무료로 하는 인터넷방송을 보면서 혼자 공부했고 단어장을 갖고 다니면서 버스 안에서도 틈틈이 외웠어요”
쉰 살의 나이에 일반인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시험을 치른 이재성 씨는 검정고시는 객관식이라서 번호에 체크만 하면 되고 실제로 손으로 쓰는 어려움은 없어 다행이었다며 웃는다. 그는 2011년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에바다평생학습학교에 입학해 이듬해인 2012년에 처음 중졸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입학 5년 만인 올해 드디어 검정고시에서 꽤 높은 합격점을 받아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장애는 단지 몸이 불편할 뿐
“20대에는 인천장애인복지관에서 칠보공예 같은 걸 배우며 지냈어요. 그러다 평택에 있는 만두공장에서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누구에게도 도움 받지 않고 내 힘으로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에 취직을 결심하게 됐죠.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파지를 주워 생활비에 보탰는데 힘은 들었지만 무엇이든 내 힘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이재성 씨는 만두공장에서 13년을 일하며 팽성읍 송화리에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는 작은 아파트를 마련했다. 처음 만두공장에서 일할 때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오전 8시경에 일을 시작해 저녁 7시나 9시까지 일하면서도 고작 20만원을 받았고 이후 노동부에서 조사를 나오면서 80만 원까지 월급이 올랐지만 공장이 기계화로 전환되자 그마저도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고.
“지금은 기초수급자와 장애인연금 등 한 달에 70여만 원으로 생활하고 있어요. 일자리를 찾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네요. 한자도 배웠고 컴퓨터도 배웠고 할 수 있는 건 뭐든 배우려고 노력했어요. 가톨릭 신자로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제게 신앙을 가르쳐주신 평택성당 이재웅 신부님은 제 인생에 가장 고마운 분이죠”
이재성 씨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품이 바르고 긍정적이며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워낙 바른생활을 고수하는 사람이라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에바다학교 교사조차도 ‘쉽게 가라고 요령을 일러줘도 우직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말할 정도다.

어려운 이웃 위해 일하고파
“기회가 올지는 모르지만 가까운 한국복지대학교에 입학했으면 좋겠어요. 사회복지사가 되어서 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은 게 제 꿈이거든요. 고통이 없다면 얻는 것도 없다는 미국 속담처럼 아무리 어려워도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노력할 거예요”
이재성 씨는 비장애인들과 소통이 되지 않을 때가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여간해서는 가족에게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그는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해달라는 질문에 이내 눈시울을 붉힌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언젠가 제가 쓴 시에 ‘통일이 되어 그대 돌아온다면/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바라보고 싶다// 마음의 상처가 더 큰 고통/ 삶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 시도 북한이 고향이었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거예요”
뇌 병변과 언어장애 2급인 자신보다도 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을 돕고 싶다는 이재성 씨, 몇 번의 좌절을 이겨내고 일반인들과 함께 시험을 치러 당당히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낸 이재성 씨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그리 녹녹치 않다. 그러나 처음엔 알아듣기조차 힘들던 그의 언어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쉽게 들리더니 어느새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타인과의 소통은 어쩌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지금처럼 가슴으로도 하는 것이라는 것, 이것은 이날 그가 내게 전해 준 가장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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