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울창한 숲속에 전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이 전나무는 매일 매일이 지루하게만 여겨졌다. 전나무는 늘 자신의 따분한 신세를 한탄하며 불만의 삶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숲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사람들은 전나무를 조심스럽게 베어 임금이 계신 궁전 뜰에 세워 놓고 자신의 몸에다 온갖 장식을 달아주었다. 그 다음날 온갖 장식으로 치장한 전나무 주위에서 화려한 파티가 벌어지고 많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훌륭한 크리스마스 트리구나”하고 감탄했다.
전나무는 비로소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 따분하기만 했던 숲속 생활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는 영광의 삶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를 지경이었다.
화려한 파티가 끝난 후 며칠이 지나자 사람들은 자신을 어두운 창고 속에 던져버렸다. 전나무는 갑자기 당하는 상황에서 말도 안 되고 이는 부당하다며 발버둥 쳤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긴긴 겨울을 어둡고 차가운 창고 속에서 지내며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지내던 어느 봄날, 사람들은 전나무를 꺼내 “정말 볼품없이 말라 버렸구나”하며 톱으로 토막 내 화덕 속에 던지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에게는 나름대로의 자기 삶의 길이 있다. 그것은 신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행복의 길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서로 뒤엉켜 울고 싸우고 죽이며 스스로 불행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왜 그런 삶을 사는 걸까?
간단히 요약하면 이야기 속의 전나무처럼 불평과 불만이 그 같은 불행을 자초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단점이 있다. 그러나 단점이 많은 만큼 장점 또한 많고 자랑할 점도 많다. 흔한 말로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했듯이 저마다 갖고 있는 달란트가 있게 마련이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그래서 다 감사드릴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불평과 불만은 대부분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데서 비롯된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능력에 대해서만 감사하고 만족해하는 생활의 지혜를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불평불만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의 분수를 알았을 때 비로소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의 출발은 자기 분수를 아는데서 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현재 주어진 것에 대해 끌어안고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것은 운명론적인 행복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단점이 있어도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말고 그 단점을 잘 이용해 장점으로 개발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영원한 모나리자의 미소를 그린 네오나르도다빈치, 그는 사생아였고 오른손이 불구인 장애자였지만 그 고통을 이겨내며 문학박사에다 신학박사까지 이뤄냈다.
발명가 에디슨도 무선전신, 영화촬영기, 전축 등 수많은 것을 발명한 사람이었지만 그도 역시 어린 시절부터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자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성장했다.
후에 에디슨은 “내가 귀머거리가 되었기에 하나님께 늘 감사했다. 귀가 들리지 않았기에 세상의 잡된 소리를 듣지 않았고 그래서 오직 목표한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그들은 자신의 단점과 고통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이를 잘 활용해 행복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의 주인공 이지선 씨는 교통사고가 나기 전에는 정말 예쁘게 생긴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화상으로 외모가 너무나 달라져 암울할 것 같다 생각했지만 오히려 매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보통사람들은 도저히 감사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상황임에도 감사하고 손가락이 다 없어졌어도 손마디가 남아서 컴퓨터를 다룰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했다.
앞서 열거한 세 사람이 자신이 갖고 있는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열등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불평만 했다면 이것은 개인의 불행을 떠나 인류사적으로도 손실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경우를 보면서 손실을 믿음으로 극복하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보다 더 멋지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톨스토이는 ‘고뇌의 기쁨을 모르는 사람은 아직 참된 인생을 시작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고통이 없으면 우리는 성장할 수도 없다. 자기 앞에 놓인 고통은 스스로 치유하고 고쳐야 할 병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의사의 처방전이 환자의 회복을 위한 것이듯 신이 내린 고통은 그 사람의 도덕적인 건강을 회복하고 인류애를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다.
고통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처럼 고통은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정해야 할 부분을 지적해주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것 같아도 은혜 안에서 거듭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감사드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자신의 단점과 타인의 불행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을 믿음과 노력으로 개선하고 향상시키면 누구라도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모든 것에 대해 믿음으로 감사하는 삶을 산다면 단점은 장점으로 바꾸며 더욱 더 큰 행복을 누리는 삶이 될 수 있다.

·본 란은 외부에서 기고해 주신 글을 싣는 곳으로 본지의 편집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深頌 안 호 원
시인, 수필가,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