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살다보면 남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이나 독선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나아가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흔하다.
결국 남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과오 때문에 초래되는 손실이나 실패를 깊이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흔히 술 취한 사람이 실수를 해 놓고 술 탓을 하는데 술을 마신 사람이 문제지 술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욕심이나 재물이나 정치 그 자체는 아무 잘못이 없다. 단지 인간이 지나친 욕심을 부리고 재물을 부정하게 모으고 술수를 쓰는 정치를 하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이나 방심이나 독선 때문에 일을 망치고 엄청난 폐해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북송 말엽 황제로부터 수차에 걸쳐 부름을 받고도 끝내 세속에 묻혀 있다 ‘고상(高尙)’이란 호까지 하사받았던 유변공(劉卞功)이 했던 세상을 경계하는 한 마디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들이 지나친 탐욕으로 자신을 죽이고 재물을 탐하면서 자식을 죽이고 부패정치로 마침내는 백성을 죽인다”
후세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말이다. 요즘 신문이나 방송매체를 통해 지나친 욕심 때문에 자신은 물론 주위사람들에게까지 아픔을 주며 상처를 입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누구든지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꿈과 욕심은 있다. 그러나 지나친 탐욕은 자기 한 몸만 망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은 물론 나아가서는 나라까지 망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가정파탄이 오면 그 사회도 자연히 혼탁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정치는 더더욱 위험이 따른다. 선의의 정치, 민의의 정치를 한답시고 정치권에 뛰어들어 백성을 고통과 죽음 속으로 몰아넣었던 무수한 사건들이 역사책의 갈피마다 흘러넘칠 정도다. 지금 우리도 자신이 직접 투표하여 뽑아놓은 정치인들에 대해 불신에 빠져버린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 책임을 누구에게 전가할 것인가. 선택을 잘못한 유권자인 우리에게 있다.
조선후기 사회에서 실학자 홍대용은 “도덕과 학술의 미혹은 천하를 어지럽게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 당시의 주요 학자들을 향해 도덕과 학술에 미혹됨이 있다고 과감히 비판했다.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의 친형들이 줄줄이 검찰에 끌려가면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란 말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허탈해진다. 아무리 화려한 꽃도 십일을 넘기지 못하고 막강한 권력도 10년을 못 넘긴다는 뜻인데 근래 한국정치는 차라리 ‘권불오년(權不五年)’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이는 5년 단임제가 되면서 정권 말이 어김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더구나 역대 어느 정권보다 도덕적으로 완벽했다고 자처하던 이명박 대통령의 친인척을 비롯한 측근비리가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문제로 온 나라가 다 시끌시끌하면서 술렁인다.
새누리당은 행여 대선에게 자기들에게 불똥이 튈까 고심을 하는 눈치다. 지난 4월 정권실세였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득 전 지식경제부차관이 금품수수 비리로 영어(囹圄)의 몸이 되더니 이어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영어의 몸이 될 처지에 이르렀다. 정말 권불오년이 맞는 것 같다.
얼마 전 종영된 ‘빛과 그림자’는 온갖 음모와 술수를 쓰고 남의 가슴에 상처를 안겨주며 금배지를 단 한 정치인이 자신으로 인해 한 가족이 파멸한, 그래서 복수심에 불타는 자식에 의해 죽는 것을 보았다. 지나친 과욕이 결국은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눈물을 흘리게 했다. 이는 국회의원들이 너무 특혜가 많다보니 어떻게 하든 금배지를 달기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행을 자행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또 있다. 대선을 앞두고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추적자’다. 대선주자들의 출마 선언이 이어지는 실제 현실과 묘하게 맞물리면서 20%대를 돌파하는 인기드라마로 부상했다. 특히 가증스러운 거짓말을 일삼는 나쁜 정치인의 전형, 대선가도에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는 대선후보, 이런 극단적인 악행이 대중드라마에 등장,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사실 그 자체가 그만큼 우리 사회의 정치혐오와 불신이 뿌리 깊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추적자’는 권력과 돈 앞에서는 적도, 동지도, 형제도, 부모자식도 상관없이 의절하는 권력의 속살을 속속들이 파헤치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노련한 정치술수와 현실을 은유한 대사도 화제다. “사랑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야. 정치도 그래. 먼저 찾아가는 사람이 지는 거야. 찾아오게 만들어야지” “30억이면 친구 딸도 죽이고 총리 자리면 평생 지켜온 신념도 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들 한다. 나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큰 마차가 먼 길 가다보면 깔려 죽는 벌레 있기 마련이다”
‘추적자’는 부도덕한, 그러나 공고한 기득권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분노, 동시에 그런 약육강식 강자의 논리가 현실임을 씁쓸하게 인정하는 허탈감이 엄습해오는 드라마인 것 같다. 특히 잇따르는 기득권에 대한 대중적 반감, 권력비리 파헤치기 계보를 잇는다. 과연 부당한 권력을 추적해 정의의 승리를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의 열망이 어느 정도 부합될는지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부당한 권력들이 정의의 힘에 무너지기를 기대해 보는 것은 내 욕심에서만 비롯된 것일까? 쇼팽의 야상곡 Op.9 No.1을 듣는다. 그리고 요절한 가수 김정호의 ‘인생’을 조용히 불러본다.
“이런 저런 생각에 하루해도 저물어, 흘러든 별빛 사이로 나는 잠들어가네, 세월아 쉬어 가려마, 꿈을 꾸는 나를 위해, 인생, 인생이란 바람 따라 가는 구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 생각이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다.

 

 

 


深頌 안 호 원
한국심성교육개발원장
심리상담사,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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