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5일 지영희학술대회, 생애·업적 학술적 논의
국악사 예정론적 평가 필요, 시대·장소·가문 필연적  
기존 ‘갈가보다’ 편곡, ‘꼭두각시’ 무용곡 탄생시켜  


 

 

 


‘민족음악을 수호한 영웅’ 지영희 선생의 학술적 업적과 생애를 되짚어보는 과정을 통해 평택을 대표하는 인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지영희를 말한다-학술대회’가 많은 지역사람들의 관심 속에 열렸다.
9월 5일 남부문예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린 이날 학술대회는 ▲이보형 한국고음반연구회장의 기조발제 후 ▲이용식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국악학과 교수 ▲이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김유석 서울대학교 박사 ▲최태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김수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겸임교수 ▲전지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등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평택시사신문>은 지영희 선생의 업적을 학술적 측면에서 재조명한 이번 학술대회를 지상중계해 국악 대중화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의 다면적인 모습을 시민들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 이보형 한국고음반연구회장

■ 기조발제
이보형 회장/한국고음반연구회

생애·업적에 대한 결정론적 평가
국악고장 평택의 국악전문인 집안에서 태어나
여러 악기·특수음악·서양음악 등 다분야 학습

지영희의 출생에 대한 예정론적 논의, 결정론적인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지영희는 일제강점기 평택의 국악전문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는 우리 음악사에 예비하는 예정론적 사건이다. 전통사회에서 대부분의 직업은 이를 전문으로 하는 집안에 의해 전승된다. 특히 전문음악은 창우집단倡優集團 출신이 아니면 배울 수 없었다.
지영희는 지용구·양경환과 같은 명인으로부터 전문적인 음악을, 지용주·오덕환·이덕만으로부터 무악과 같은 특수 음악을, 김동진·김희조로부터 서양음악 이론을 배웠다. 지영희는 왜 수많은 명인명창들에게서 다양한 부문을 학습했을까? 짐작하건대 장차 미래에는 연주 뿐 아니라 편곡·작곡·음악 편성·관현악 편성·무용음악 편성·극음악 편성·관현악 지휘와 같은 여러 분야가 활성화 될 것이라 보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 다 분야 학습을 실천한 것이 아닌가 싶다.

▲ 이용식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국악학과 교수

■ 주제발표
이용식 교수/전남대학교 예술대학 국악학과

경기지역 기악 명인의 음악활동
경기 굿판 무속 악사, 방송매체 적극 활용
뛰어난 음악성으로 전통음악 명맥 이어가

1927년 개국한 경성방송은 당시 인기 있던 ‘조선음악’을 전국적으로 보급했던 매체다. 이를 적극 활용한 음악가 집단 중 하나가 경기 굿판의 무속 악사들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음악환경에 적응하며 굿 음악을 대중적인 음악으로 발전시켰다. 방송 초기 가장 활발히 방송 활동을 한 경기악사는 수원 출신 지용구다. 1940년 이후에는 지영희가 피리 연주로 방송에 데뷔했다. 이들은 방송매체 특성 상 굿판에서 주로 연주하는 ‘대풍류’ 대신 ‘줄풍류’를 연주했다. 이를 통해 이들이 여러 갈래의 음악을 두루 섭렵한 대가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이 활발한 활동을 했기에 일제강점기 전통음악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 이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 주제발표 
이진원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꼭두각시’ 무용곡 탄생에 대한 검토
여러 민요에서 ‘꼭두각시’ 모체 ‘갈가보다’ 등장
선배 연주곡, 지영희가 세련된 무용곡으로 편곡

일반적으로 무용곡 ‘꼭두각시’가 ‘갈가보다’라고 불리니 아마도 신민요 ‘갈가보다’가 꼭두각시의 모체가 됐을 것이다. ‘갈가보다’라는 사설이 등장하는 민요 연구를 통해 무용곡 ‘꼭두각시’가 민요 ‘삼부자타령’ ‘늴늴타령’ ‘방물가’ 등의 선율의 앞 네 장단을 차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여섯 장단을 ‘늴리리야’ ‘선소리 산타령’ 등의 선율진행을 활용, 변주해 구성한 기악곡임을 알 수 있었다. 1937년 정해시·김덕진·한성준 등이 기악곡으로 ‘갈가보다’를 연주했고, 그들의 후배이자 제자인 지영희가 이를 받아 세련되게 편곡해 무용곡 ‘갈가보다’를 구성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김유석
서울대학교 박사

■ 주제발표 
김유석 박사/서울대학교

지영희 명인의 <민속장고> 연구
생전 전통음악 발전·계승 더해 교육에 공 들여
<민속장고> 민속 기악곡 장단연주 이론적 설명

지영희가 정리한 <민속장고>는 장단의 어원에서부터 비슷한 장단과의 차이점, 장단 구조 등까지 자세히 설명해 민속 기악곡 장단연주에 필요한 이론적 설명을 이뤘다는 의의를 갖는다. 특히 교육용 교재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어 초보자, 중급자를 구분하고 나아가 전문적 수준까지 이어지도록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나아가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굿거리·자진모리·휘모리까지 산조 연주에 필요한 장단의 연주방법을 소개하고, 이를 정간보에 기보해 이해가 쉽도록 한 것도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 최태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 주제발표 
최태영 전문사/한국예술종합학교

지영희·임선문 해금 경기시나위 비교분석
‘도살풀이’ ‘도살풀이모리’ 음원 분석 연구
운지법 등 차이 통해 경기무속 가치 엿봐

이번 연구에서는 동시대 활동했던 임선문과 지영희의 연주를 비교·분석해 해금경기시나위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음악어법을 확인하고자 한다. 분석할 음원은 1968년 지영희 ‘해금시나위와 산조’와 1974년 임선문 ‘경기무악’ 음반 중 ‘도살풀이’ ‘도살풀이모리’다.
비교분석 결과 ▲해금 운지법 ▲선율에서 나타나는 풀현 음 ▲내드름·종지형에서 나타나는 선율 ▲솔-파의 유형·기능 ▲관용적 선율구 ▲리듬의 유형·운용방식 등에서 차이를 확인했다. 이번 연구를 통해 각자의 영역에서 독보적인 기량과 음악성을 펼친 두 명인의 가치를 살펴 볼 수 있었다.

▲ 김수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겸임교수

■ 주제발표 
김수현 겸임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지영희의 음악교육론
20년간 교육역량 키운 후 삶 후반부 교육 주력
무속음악 자부심 강해, 근대식 교육시스템 수용

지영희는 20년 넘게 명인들을 찾아 음악을 배우며 교육역량을 키웠고 1945년 이후에는 교육에 주력했다. 지영희의 교육철학을 보자면 그는 무속집안 출신이었지만 오히려 그 음악에 자부심이 강했고 이를 토대로 넓게 익히고 계승하고자 하는 음악관으로 학생들을 교육했다. 뿐만 아니라 근대식 교육시스템으로 체계적인 교육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전통적인 악기 교육 방식인 입으로 소리를 흉내 내는 ‘구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악보를 만들어 주거나 그것을 필사해 지참하게 하는 등 근대식 교육시스템도 수용했다.

▲ 전지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 주제발표 
전지영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삶에 대한 해석과 비판적 사유
‘근대화 지향’ 아닌 ‘자주성 투쟁’ 타당
과잉평가 지양, 자아성찰 표상 삼아야 

지영희의 음악활동과 교육활동은 ‘근대화’라는 평가로 귀결된다. 관현악단 탄생, 관현악곡 창작과 지휘, 오선보 사용을 통한 교육 등이 이런 평가의 근거가 된다.
다만 지영희 활동에 대해 ‘근대’의 잣대를 투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지영희가 그토록 국악 교육을 강조한 시대정신은 스러진 국악을 민족음악의 차원에서 회복해 자아정체성과 자존감을 회복하고자 하는 자주적 예술정신이었다. 지영희 평전 등 여러 기록들에서 과잉평가의 흔적들이 발견되는데 지영희의 위대함은 당대에 대한 성찰·반성에 의해 점증되는 것이다. 지영희는 이제 자아성찰의 표상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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