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가 숨 쉬는 유일한 공간이죠”

 

전업 작가, 하루 13시간씩 작품 써
평택 고덕 출신 베스트셀러 소설가


 

 

 

‘우울은 신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고 선언한 심리학자 융의 말이 가장 잘 적용되는 사람은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작가들일지 모른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 깊숙이 침잠해 들어가 그 안에서 꿈틀대는 자신과 조우할 때 비로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4권의 소설책 펴낸 작가
“가장 최근 작품은 지난해 펴낸 <파묻힌 도시의 연인> 이에요. 베수비오화산 폭발로 사라진 도시 폼페이에서 벌어지는 사랑이야기죠. 이 작품은 주인공과 6명의 주변 인물들이 먼저 정해진 뒤에 줄거리를 쓰기 시작했어요. 생생한 인물들을 세밀하게 구상하고 나니 그 인물들이 알아서 제각각 움직이더라구요”
평택 고덕면 출신의 소설가 한지수(49) 씨는 2006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에 중편 <천사와 미모사>가 당선된 이후 단편집 <자정의 결혼식>, 장편소설 <헤밍웨이 사랑법>  <빠레, 살라맛 뽀> <파묻힌 도시의 연인> 등을 연달아 펴내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빠레, 살라맛 뽀>는2014년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며 재미와 탄탄한 구성을 인정받았다.
“작품은 주로 아침에 시작해서 가족들이 들어오는 늦은 밤까지 계속 써요. 시간으로 따지면 평균 13시간 정도 되죠. 어떨 땐 늦은 시간에 들어온 남편이 다시 밖으로 나가서 PC방 같은 곳에 있다가 새벽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어요. 글 쓰는 저를 배려해서지만 그럴 때는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들죠”
한지수 작가는 남편 이야기를 하다 잠시 말을 멈춘다. 지금은 그녀의 든든한 후원자이지만 한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혼을 결심했을 만큼 힘든 관계를 이어가던 장본인이 바로 남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겪었던 당시의 힘든 시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글에 몰두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고통의 시간들로 일궈낸 작품
“이십대 초반에 남편을 만났어요. 8년째 되던 해에 공황장애 판정을 받았고 그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이혼을 했죠. 사람들이 이혼을 실패라고 생각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실패해야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생길 것 같았거든요”
한지수 작가는 이혼한 4년 뒤인 2011년 남편과 다시 재결합했다. 이혼 후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성격심리학의 일종인 MBTI를 공부한 후에야 비로소 남편을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는 그녀는 결혼 생활 당시 그토록 이해하지 못했던 남편을 이해하게 된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다며 미소 짓는다.
“이혼 후에 서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고 이해의 폭도 더 넓어졌죠. 아마도 그런 이해의 폭은 제 소설 속 등장인물에게도 결부 돼 있을 거예요. 이혼한 후에 출간한 소설책이 <자정의 결혼식>이라는 단편집인데 거기에는 당시 결혼에 대한 제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하나이면서도 둘이고, 둘이면서도 하나인, 서로 섞일 수 없으면서도, 서로 섞이는 이야기들이 담긴 이 소설을 독자들은 독특한 표지와 함께 오래 기억되는 작품으로 꼽는다. 그녀의 소설 중에서도 특히 2012년 출간된 장편소설 <헤밍웨이 사랑법>은 사랑과 폭력, 그리고 비폭력대화법에 관한 내용으로 독자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좋은 장편소설 10편 쓰는 게 희망
“제 소설 속 주인공은 영웅이 없다는 게 특징이에요. 대신 일명 ‘흙수저’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 모두가 꺼리는 흙탕물에서 뒹구는 리얼하고 독특한 인물이 주인공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래서 소설을 시나리오로 변경할 때는 영웅적인 인물이 없어 애를 먹기도 해요”
2014년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 우수상을 수상한 <빠레, 살라맛 뽀>는 ‘친구, 고맙네’라는 뜻을 가진 블랙코미디로 필리핀 올로케를 통해 탄생했다. 한인들을 상대로 소소한 사기를 치며 살아가는 주인공 제임스와 그에게 납치당한 부자 노인의 이야기는 향후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지금은 <여섯 번째 아내>라는 장편소설의 초고를 끝낸 상태예요.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은 여자의 메모로 시작되는 소설인데,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직접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작년 3월에는 길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직접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죠.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을 빨리 발표하기 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좀 더 작품성 있는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삼십대 초반에 작가로서의 길을 결심했다는 한지수 작가, 가슴 속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설에서 모두 풀어내며 스스로를 치유한다는 한지수 작가는 죽을 때까지 좋은 작품 10편을 꼭 쓰고 싶은 소망이 있다며 환하게 웃는다. 인터뷰가 끝난 뒤 밝은 미소와 깊은 사색의 눈동자를 함께 가진 소설가 한지수가 보여줄 다음 작품이 못내 기다려지는 것은 그녀의 작품에 대한 강한 열망이 다음 소설에서는 과연 어떤 색깔과 문체로 독특하게 그려질까 하는 독자로서의 강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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