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가루를 주원료로 반죽을 해서 국수를 뽑는 함흥냉면과 가자미 식혜, 그리고 메밀가루가 주원료인 평양냉면과 빈대떡은 북한의 대표적 음식입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웬만한 집에 가면 나무를 깎아서 만든 국수틀을 늘 부엌에다 걸어두고는 툭하면 밀국수를 뽑아먹거나 모밀국수, 냉면국수를 뽑아 한겨울 찡한 동치미국물에 말아 털도 다 뽑지 않은 삶은 돼지고기를 고명으로 얹어서는 우걱우걱 먹었습니다.
국수틀이 있기에 예고 없이 손님이 갑자기 들이닥쳐도 냉면 한 그릇이면 누구에게라도 진수성찬이었습니다. 남쪽에서 냉면으로 먹는 국수에는 다른 성분이 들어가지만 이북에서는 주로 모밀로만 뽑아낸 시커먼 모밀 막국수였습니다.

북신 北新

거리에는 모밀내가 났다.
부처를 위하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 같은 모밀내가 났다.
어쩐지 향산 香山 부처님이 가까웁다는 거린데
국수집에서는 농짝 같은 도야지를 잡아 걸고 국수에 치는
도야지 고기는 돗바늘 같은 털이 드문드문 박혔다
나는 이 털도 안 뽑은 도야지고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또 털도 안 뽑은 고기를 시꺼먼 맨모밀국수에 얹어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가슴에 뜨끈한 것을 느끼며
소수림왕小獸林王을 생각한다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을 생각한다
- 백석 詩  ‘북신 北新’  전문 全文 -

‘고박사’ 냉면이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에서 제일가는 냉면이 된 것은 오직 한가지 현대인의 입맛에 딱 맞는 냉면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평택에는 고박사 냉면 보다 한걸음 앞선 ‘강서면옥’이 통복리 시장 안에서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서울 곳곳에서 냉면맛을 내고 있는 ‘강서면옥’의 출발지가 바로 평택 통복시장 안 ‘강서면옥’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처음 냉면을 말던 할머니는 십 수 년 전 돌아가셨고 가업을 이어받은 자제가 냉면집을 계속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문을 닫게 되어
‘강서면옥’은 이제 전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강서면옥’ 냉면이 가장 이북 냉면에 가까운 맛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이북냉면 육수맛에 입맛이 길들여지려면 아마도 최소한 3년 이상 주말마다 냉면을 먹어야 슴슴한 맛의 깊이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즈음 모든 음식은 달거나 아니면 복잡한 사회구조처럼 말초적 자극을 요구하는 현대인의 입맛을 겨냥해 많은 음식들이 자극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어 본래 맛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냉면뿐만이 아니라 겨울이 길고 날이 추운 탓에 음식이 잘 상하지 않는 이북 음식은 대체적으로 싱거운 맛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6.25 때 피난 온 이북 사람들은 남쪽으로 내려와서도 그 입맛을 쉽게 버리지 못해 싱겁게 김장을 담궜다가 봄도 채 오기 전에 북북 괴서 제대로 김치다운 김치를 먹지 못하고 김치찌개나 해먹다가 결국에는 그 마저도 먹지 못하고 군내가 나서 버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김장김치를 싱겁게 담그는 탓에 이북사람들은 겨울철이면 언 밥을 김장김치 국물에 말아먹는 별미를 즐기기도 합니다. 그냥 밥이 아니라 한겨울 밥을 장독대에 내놓으면 금세 밥이 꽝꽝 어는데 그 밥을 김장독에서 퍼낸 시뻘건 김장김치 국물에 말아먹는 것이지요. 물론 김치말이를 먹고 나서는 냉면을 먹을  때와 마찬가지로 뜨거운 물을 마십니다.
고박사 냉면은 뱃속까지 찌르르르한 시원하고 진한 육수 맛으로 지역에 상관없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모두 사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경상도건 전라도건 지방으로 여행을 가서 평택에서 왔다고 하면 평택이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고박사 냉면은 다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박사 냉면의 명성은 국내에서만 유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이북에서 피난 온  연세가 많이 드신 노인 분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 분들은 하나같이 평택에 있는 고박사 냉면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고향에서 먹던 냉면 맛을 잊지 못하는 향수 鄕愁였던 것이지요. 
고박사 냉면을 이야기 하면서 ‘민짜’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같은 돈을 내고 먹는 냉면이지만 주문을 할 때 미리 ‘민짜’를 시키면 냉면 위에 얹는 고기대신 그만큼 냉면국수를 주는 것이 ‘민짜’입니다. 그러니까 냉면은 ‘맛’이기도 하지만 ‘밥’이기도 해서 삼팔선을 넘어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온 이북사람들은(속칭 - 삼팔따라지) 냉면국수도 배가 터지도록 먹어야 만족했습니다.
그래서 냉면에 한두 점 얹어지는 ‘ 고기 대신 배가 부른 냉면국수를 더 많이 먹기 위해 ‘민짜’를 주문했는데 민짜는 국수 양으로 따지면 한 그릇 반에 해당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첫 젓가락으로 건진 냉면을 입에 넣을 때 코끝에서 풍기는 모밀향기를 음미하기 위해 국수가 많은 ‘민짜’를 주문하는 것입니다.
사회문화가 다양화되면서 음식상품은 역사유적지나 관광지 못지않은 부가가치를 창출합니다. 불과 3-40년 전에 시작된 일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박사 냉면에서 비롯된 고박사-고복례 냉면이 평택을 대표하는 세계적 음식으로 다시 거듭나기를 기원합니다.

 

*작가 이동진은 홍익대 미대, 한광고등학교 교사, MBC창작동요제 대상곡 ‘노을’의 작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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