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사는 게 가장 행복하죠”


학생·노동운동에서 정치인까지
수의사, 농가도움 주는 일 보람

 

 

 

 

누구나 가슴 속에 지뢰 하나씩을 묻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삶의 경험에 따라 빨리도, 혹은 느리게도 터질 수 있지만 그렇게 개인의 내면에서 출발해 터진 지뢰는 개인을 치유하고 사회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촉매가 된다.

개성 없는 청소년에서 수의사까지
“중학교 때는 열심히 공부만 했어요. 개성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었는데 성적은 상위권인 그런 학생이었죠. 수학성적이 나빴음에도 건축 등 이과계열이 적성일거라 믿으며 성장했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막연히 말을 타고 소를 키우는 걸 동경하던 아이였어요”
충북 옥천이 고향으로 평택시 고덕면 동청리에서 보람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송치용(53) 원장은 서울대 수의학과를 졸업한 엘리트 수의사지만 지역에서는 수의사라는 직업보다 정치인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학생운동을 하느라 7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어요. 졸업 직후인 1989년에는 우성사료에 입사해 5년여 동안 양계부문을 맡아 전국을 다니며 수의서비스를 했죠. 대리점 세 개와 농가 20~30여 곳을 관리했는데 사료 판매보다는 농가들의 생산계획을 짜주고 관리해주는 일에 보람을 느꼈어요. 농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정말 행복했죠”
송치용 원장은 이후 다국적 동물약품회사와 조치원에 있는 대리점에서도 일할 기회가 있었지만 자신은 여전히 사료나 동물약품을 파는 일보다는 농가에 나가 교육을 하거나 그분들과 인간관계를 맺으며 지내는 일이 더 적성에 맞았다고 말한다. 대학 동기의 권유로 평택에 대리점을 하게 될 기회가 생겼고 평택기계공고 앞에 ‘보람동물병원’을 개원해 수의사로서 조금은 편안한 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깃들어 있던 마음의 빚은 그를 다시 힘든 정치에 입문하도록 만들었다.

마음의 빚으로 시작된 정치입문
“1983년 대학에 입학한 이후 학생운동을 시작했어요. 시위에 가담하게 됐고 3학년 때는 안양공단 기아자동차 하청업체에 위장취업 해서 노동운동을 하기도 했죠. 그게 운동권 학생들의 정해진 수순 같은 것이었으니까요”
1986년 9월, 송치용 원장은 노동운동을 하던 당시 유인물을 돌리다 붙잡혀 재판을 받았고 그해 크리스마스 때 가석방으로 풀려나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6월 민주화항쟁 이후 제적당한 학생들의 복교가 이뤄져 3학년 2학기로 재입학할 수 있었지만 집안형편이 어려운 탓에 다시 학생운동에 전념하지는 못했고 그 일은 오랫동안 그의 마음 속에 빚으로 남았다.
“유시민 전 장관이 대선후보로 나왔던 2007년 당시 팬 카페인 ‘시민광장’ 회원으로 가입했는데 한 달에 한번 수원에서 시민광장 지지자들 모임을 가졌어요. 그게 정치입문의 계기가 됐죠.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에는 1주일 간 수원역에 살면서 밤 11시 막차로 귀가하며 분향소를 지켰는데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몰려든 많은 사람들은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그 사건 이후 송치용 원장 역시 많은 것이 변했다. 고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뜻 시민사회에 힘을 보태는 일에도 머뭇거리기도 했었지만 그는 평택지역 시민광장의 대표에서 국민참여당 평택지역위원장이 됐고, 결국 2012년 제19대 통합진보당, 2016년 제20대 정의당 평택시갑 국회의원 후보로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됐다.

내 자리에서 보람 있게 살고 파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 성품대로 살게 마련인 것 같아요. 저 역시도 어느 위치에 있든 그곳에 도움이 되는 것이 행복했던 사람이니 자리 욕심이나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욕심보다는 보람 있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더 좋고요. 어떤 모임에서도 튀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틀렸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과감하게 목소리를 내야만 하는 것도 저의 타고난 성격이죠”
스스로 정치 체질은 아님에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일조하고 싶었다는 송치용 원장은 지난 선거 때도 선거에 효과적이라는 유세차를 활용하기 보다는 스피커 하나를 장만해서 직접 끌고 다니며 전통시장 유세를 하기도 했다. 세상의 혼란에 섞이지 않고 페이스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그는 총선을 두 번이나 치르고도 자신처럼 잘 버틴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며 크게 웃는다.
“우리 역사에서 힘없는 사람이 이긴 적이 한 번도 없었잖아요. 그런데 이번 촛불집회에서는 초창기부터 승리를 예감했어요. 전에는 학생운동 때의 기억으로 길에 나가 전경만 봐도 무서움을 느끼곤 했는데 이번 촛불집회에 참석하면서 그 트라우마도 치유가 됐죠. 어릴 적 친구들도 이제는 모두 나를 정치인으로 봐주니 이젠 모든 면에서 더 조심스러워져요”
국민참여당 지역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최소한 당을 알리는 역할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출마를 결심했었다는 송치용 원장, 자신이 생각한 원칙을 지키며 앞만 보고 꾸준히 걸어가는 길을 택하겠다는 송치용 원장은 현재 자신이 맡고 있는 청소년카페 모모의 운영위원으로 지역 일에도 바쁜 일정을 쪼개가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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