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동 미군부대 앞 ‘미쓰리·미쓰진 햄버거’
30년 전통, 평택을 넘어서 한국의 명물로 자리 잡다

평택시 신장동 K-55 미군부대를 떠올리면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송탄햄버거’ ‘미쓰리햄버거’로 불리는 수재 햄버거다. 이제는 송탄에서 탄생한 유명한 먹거리로 인식이 되어서 타 지역에서도 ‘송탄햄버거’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니 그 유명세를 가히 짐작할 만 하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음식에서 이젠 우리나라 사람들도 가벼운 한 끼 식사로 즐겨먹는 음식이 된 ‘햄버거’, 한때는 달러를 긁어모았다는 말도 나올 만큼 호황을 누렸던 송탄햄버거는 3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이젠 전국에서도 유명한 평택의 토종으로 자리 잡았다.

 
▲ 미쓰리 햄버거 김정수 대표
30년 역사 곽 씨네 ‘미쓰리햄버거’
“포장마차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하고 6년 정도는 한국 사람한테 햄버거 안 팔았어요. 달러를 벌어들여 국가이익을 위한다는 명목도 있었지만 미국사람들한테는 팁 문화가 있어서 1개를 팔아도 이익이 더 남았거든요. 1달러를 내면 원래는 햄버거 2개를 줘야 하는데 미국사람들은 햄버거 1개에 10달러도 주고 그랬으니까요. 장사가 잘 될 땐 하루에 200~300 달러도 벌고 그랬어요. 당시는 세 줄로 서서 기다리며 햄버거를 사가기도 해서 내 하루 벌이가 다른 포장마차 세 집 합쳐도 안 될 만큼 많았던 시절도 있었죠”
1982년 4월 좌판으로 햄버거 장사를 시작했다는 김정수(65) 씨는 지금도 세 형제 모두가 햄버거 장사를 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처음 시작한 그는 현재 아들과 함께 신장동 미군부대 앞에서 ‘미쓰리햄버거’ 간판을 내걸고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미쓰리햄버거’라는 이름은 주인이 이 씨 성(姓)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인이 부르기 쉬운 한국인 성씨가 ‘미쓰리’였기 때문에 그렇게 붙였다는 말도 들려준다. 실제로 아내의 이름은 ‘곽’씨라 미국인이 부르기는 어려운 발음이었다고 한다.
“1995년에 아내가 암에 걸려 4년 정도 가게를 쉬다가 다시 시작했죠. 지금은 아들과 함께 하는데 종류는 예전보다 다양해졌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맛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예요. 햄버거 안에 들어가는 패티(patty)나 소스(sauce)는 지금도 직접 다 만들어 쓰는데 대형 패스트푸드점과 다른 점은 계란프라이가 들어가 채소와 어우러져 부드러운 맛을 낸다는 것이죠”
김정수 씨는 한때 대형 패스트푸드점에서 당시 1천만 원이라는 큰돈에 스카웃 제의를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내의 만류로 그 유혹을 거절하고 미쓰리햄버거 특유의 맛을 지키며 지금까지 지내왔는데 덕분에 20년 이상 된 단골이 찾아오는 것은 물론이고 며칠 전에는 30년 전 초창기에 단골이었던 미국인이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들과 물어물어 찾아오기도 했다. ‘미쓰리햄버거’는 현재 상표등록이 되어있어 어디서도 함부로 쓸 수 없는 평택의 고유명사로 자리잡았다.

 
▲ 미쓰진 햄버거 전문화 대표
20년 역사 전 씨네 ‘미쓰진 햄버거’
“처음엔 튀김장사로 시작했죠.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했으니까 노점장사는 벌써 35년이고 햄버거 장사도 벌써 20년이 되어가네요. 노점상 한다고 단속 나와서 리어카도 숱하게 뺏겼죠. 평택경찰서에서 자고, 아침에 수원법원 가서 재판받고, 벌금내면 다시 또 리어카 끌고 나와서 노점상하고 그랬어요. 먹고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었죠. 연탄불 피워 하던 장사가 지금은 가스에 미국서 수입해 온 팬까지 갖춰놓고 할 만큼 세월이 지나긴 했네요. 지금은 햄버거 종류도 20여종이나 되지만 당시에는 핫도그랑 샌드위치, 햄버거 이렇게 3종류 밖에 없어요. 예전에는 미군 손님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한국 손님이 대부분이죠”
부대 앞에서 ‘미쓰진햄버거’를 운영하는 전문화(58) 씨는 ‘미쓰진’이라는 이름은 성(姓)을 따서 지은 것이 아니라 진짜 햄버거라는 뜻의 ‘진(眞)’이라고 말한다. 전문화 씨의 딸은 엄마가 리어카 장사를 할 때부터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본 산 증인으로 현재는 엄마의 뒤를 이어 미쓰진햄버거를 엄마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명목은 햄버거가게지만 타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노점상은 편한 이야기 상대이기도 해서 미군들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도 찾아오면 온갖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어요. 한번은 미군에게 택시비를 꿔주기도 했는데 다음날 부대 안에서 바닷가재를 대접받기도 했죠. 세살 때 봤던 아이가 이젠 대학 졸업 후 직장인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손님은 먼 곳으로 결혼해서 갔다가도 아이 손잡고 찾아오기도 하고, 미국 들어가서 편지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게 다 오랜 시간 가게를 이어온 보람이죠”
전문화 씨는 현재 딸, 사위와 같은 가게에서 프라이팬만 따로 나눠 일을 하고 있다. 엄마가 쓰던 프라이팬을 물려받은 딸의 경력도 어느새 만만치 않은 16년으로 접어들었다.

전국에서도 찾는 평택 햄버거의 ‘맛’
전국에서도 ‘송탄햄버거’하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실제로 찾아오는 사람도 줄을 이을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다.
계란, 양배추, 피클, 양파, 마요네즈, 머스터드소스, 케찹, 돼지고기 또는 쇠고기 들어가는 내용물까지 한 눈에 알아보기 쉽게 적혀있어 그 중 싫어하는 재료는 언제든 고객의 요구에 의해 빼주기도 한다. 송탄 햄버거가 다른 햄버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햄버거에 계란후라이를 넣었다는 점이다. 물론 소스를 비롯해 패티를 만드는 재료까지 그 비법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지만 계란후라이가 들어가 다른 재료들과 어울림으로 인해 맛이 훨씬 부드럽게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예전 우리나라 사람들은 빵은 주식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었지만 송탄햄버거는 속에 들어있는 재료들이 워낙 푸짐해서 한 끼 식사로도 충분했다는 것이 주변인들의 이야기다.
신장동 K-55 미군부대 앞에는 ‘미쓰리햄버거’와 ‘미쓰진햄버거’를 비롯해 신장동쇼핑몰 한가운데서 포장마차로 28년을 이어온 ‘미스킴햄버거’ 역시 사촌은 송탄출장소 앞에서 ‘짱구버거’를 운영하고 아들은 서정동 경기도립중앙도서관 평택분관 입구에서 ‘떴다버거’를 운영하며 대대로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밖에도 신장동 부대 주변에는 ‘육교햄버거’, ‘은혜햄버거’, ‘한스버거’ 등 많은 햄버거 가게들이 즐비하다.
햄버거 하나로 평택의 토종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미군부대 앞 햄버거 가게들. 인터넷을 통해 ‘송탄햄버거’나 ‘미쓰리햄버거’를 검색하면 전국의 수많은 네티즌들의 입소문이 여실히 드러난 글들이 줄줄이 이어져 햄버거 고장으로서의 평택의 명성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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