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음, 자연의 이치 깨닫는 과정이죠”

남도소리 진수 평택에 선보여
정통 소리의 맥을 잇는 움아트

 

 

 

전라도는 유독 명인 명창을 많이 배출해 낸 곳이다. 명창도 많지만 그 소리를 듣고 평가할 줄 아는 귀명창도 많아 어지간한 실력이 아니고서는 그곳에서 쉽게 무대에 서지도 못한다고 전해진다.

움아트 정신은 ‘온고지신溫故知新’
“열네 살 때부터 판소리를 배웠어요. 어려서부터 집에 전축과 텔레비전이 있었던 덕분에 아버지가 틀어놓은 춘향가를 따라 부르곤 했죠. 전문적인 교육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판소리 5바탕 중에서 적벽가는 김일구 선생님에게, 수궁가와 심청가·춘향가는 김영자 선생님에게, 흥보가는 신영희 선생님에게 사사받았죠”
평택에 남도소리를 전파하고 있는 국악단체 ‘움 아트’ 조정란(52) 대표는 전남 고흥의 방앗간집 셋째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남도소리를 듣고 배우며 자랐다. 2014년 1월 6명의 여성 국악인들이 모여 창단한 움아트는 옛 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 정신을 바탕으로 창작국악 연습에도 매진하고 있다.
“요즘은 어떤 장르이든 퓨전이 대세지만 전통을 저버리는 퓨전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새로움도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한 새로움이어야 하고 그것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창작도 있어야 하죠. 그래야 기품 있고 멋스러운 작품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움아트는 취미로 시작해서 만든 단체가 아니라 어려서부터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연구하는 단체인 만큼 지금도 소리에 대해 공부하고 단원들이 서로 만나게 되면 우리의 소리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공연, 우리의 것을 발전시키는 방안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눈다. 한 스승 밑에서 사사받은 동료이자 선후배 사이로 오랫동안 끈끈한 인연을 잇고 있는 단원들은 서로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도 숨기지 않는다.

송탄에 둥지 튼 남도소리 명창
“송탄에 정착한지도 벌써 10년이나 지났네요. 남편이 서울에서 요식업을 했기 때문에 송탄에 내려와서도 ‘갈비성’을 운영했죠. 지금은 평택축협 ‘미한우’도 함께 운영하고 있고요. 공연이 없을 때는 이곳이 내 무대예요.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즐겁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곤 하죠”
‘움 Art’는 남도소리를 바탕으로 판소리, 한국무용, 가야금 등 가歌·무舞·악樂을 더해 정통과 퓨전을 넘나든다. 전국의 명인들을 찾아다니며 공부에 매진했다는 단원들은 평택시민들에게도 남도소리의 진가를 보여주겠다는 당찬 각오로 활동을 시작한 20년 지기 동료이자 선후배다. 단체명이기도 한 ‘움’처럼 단원들은 매회 공연 때마다 새로운 공연, 즐거운 공연, 그리움을 남기는 공연을 꿈꾼다.
“모두 전라남도 출신들로 구성됐어요. 남도소리는 아무대로 그쪽이 본류니까요. 그래도 제가 평택에 살고 있고 대표를 맡고 있으니 이곳에 둥지를 틀고 평택시민들에게도 남도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어디 출신인지 보다는 시민들에게 얼마나 수준 높은 무대를 선보일 수 있느냐가 중요하잖아요”
첫 공연을 할 당시 비용 5000만 원은 전부 자비로 했다. 국악인 오정해와 신영희 선생 등 워낙 유명한 분들과 함께 했던 공연인 만큼 지역에 미친 파장도 컸다. 그날 몰려든 많은 관객들과 소통하다 보니 시간이 길어졌는데도 모두 자리를 지키는 등 호응도 높았고 티켓을 판매한 수익금 500만 원은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도 했다.

후학 위한 주춧돌이 되고 싶어
“소리 속 가사에는 삼강오륜은 물론이고 인간이 지켜야 하는 모든 것들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소리를 가르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것들을 깨닫게 되죠. 일반 사람들은 피를 토해야 득음을 한다고 알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득음이란 물리적인 것이 아닌 인간의 도리, 자연의 순리를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조정란 대표에게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던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 설상가상 30대 초반에 갑상선을 앓아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하기도 했고 어렵게 일군 경제적 기반까지 타인에 의해 모두 잃었던 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녀를 다시 일어서게 한 힘은 바로 ‘소리’였다.
“이 단체를 잘 키워서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그래서 후배들이 큰 걱정 없이 예인의 삶을 살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죠. 거창하게 철학을 따질 필요 없이 그냥 누군가를 위해서 사는 것이 즐겁고 내가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얼핏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음식점과 단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박사과정을 공부한 예술단체 대표 역할을 조화롭게 잘 이끌어가고 있는 조정란 대표, 열심히 벌어서 하고 싶은 소리를 마음껏 할 수 있고 후배들을 위해서도 충분히 돕고 싶다는 조정란 대표는 남도소리를 전파하고 연구하는 국악인이자 연구자인 만큼 어떤 화려한 프로필보다 그저 ‘국악인 조정란’으로 불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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