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눈이 내립니다. 서정주 시인이 시 속에서 했던 말처럼 눈은 내게 “괜찮다… 괜찮다…” 하며 말을 건네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하얗게 만드는 눈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상처 난 마음도 정말 괜찮아질 것 같습니다.  

함박눈이 내리는 오늘, 한 시인이 SNS에 누구라도 좋으니 함께 만나 금방 지져낸 부침개에 막걸리 한주전자를 마시고 싶다는 공고문을 내걸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부침개나 막걸리보다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먼저 와 닿습니다.

그것은 체온보다 높은 말의 온도에서 비롯되는 것, 어쩌면 시인은 지금쯤 눈빛이 따뜻한 사람들과 막걸리 한잔을 기울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넓은 창밖으로 펑펑 내리는 흰 눈을 보며 한 끼 밥도 되지 않는 시를 진지하게 얘기하면서 말입니다.

밖은 온통 하얀 눈의 왕국입니다. 코는 어느새 빨갛게 변하고 손도 꽁꽁 얼었습니다. 그러나 겨울 한파가 아무리 나를 얼게 만들어도 내 안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입김이 새어나옵니다. 조금만 입술을 열어보여도 입김은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앞으로 씩씩하게 나아갑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만들어내는, 살아있음이 만들어내는 온도입니다. 살아있는 한 누구도 꺼트릴 수 없는 변하지 않는 온기가 내 안에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도 어느새 흰 눈이 소복이 쌓였습니다. 눈은 나무와 하나가 되어 어느새 나무가 금방 피워낸 꽃처럼 아름답습니다. 한 번도 꽃피우지 못한 상록수들도 오늘은 모두 흰 눈꽃을 피웠습니다. 겨울에는 결코 꽃을 피울 수 없을 거라는 우리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에 보란 듯이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무와 눈이 함께 피워낸 눈부신 작품, 자연은 스스로 꽃 피울 수 없을 때 서로가 서로에게 꽃이 되어주는 법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매년 다른 언어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모든 자연이 서로에게 꽃이 되어준다는 건 올해 처음 알게 된 비밀입니다. 그 비밀은 무척 황홀하고 아름답습니다.

마음이 추울 때 우리를 다시 꽃피우게 하는 것도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눈꽃처럼 내 손을 잡아 줄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함께 했을 때 우리는 다시 환하게 꽃으로 설 수 있을 테니까요. 어쩌면 우리의 체온이 항상 변하지 않는 것도 다른 사람과 더 많이 온기를 나누어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의 가르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곁에는 이미 서로에게 꽃이 되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마법처럼 겨울에도 따뜻한 온기가 흐를 수 있는 것이겠지요.

서로가 서로에게 꽃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살아있는 한 누군가의 꽃이 되어줄 수 있고 누군가도 나에게 와서 꽃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 추운 겨울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눈이 들려준 이 세상의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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