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목사가 새로운 교회에 부임했다. 몇 달이 지나면서 그 목사에 대한 소문이 교회는 물론 읍내에까지 파다하게 퍼졌다. 목사가 사모를 심하게 폭행해서 견디다 못한 사모가 가출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 소문은 발도 없는데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소문대로 사모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달이 그렇게 흘러간 어느 날 목사는 입을 잠시도 가만 놔두지 않는 집사와 교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조용히, 아주 조용하게 입을 열어 이렇게 말을 했다.
“많은 분들이 제가 제 아내를 때려서 아내가 집을 나갔다고 말을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저는 분명코 아내에게 폭행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둘째, 제 아내는 집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셋째, 저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노총각입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목사에게 아내가 있었고 또 때려서 집을 나갔다고 이야기가 와전되어 퍼진 것이었다.
사자성어에 언비천리(言飛千里)란 말이 있다. 즉 ‘말이 천리를 날아간다’는 뜻도 된다. 이는 말이 몹시 빠르고도 멀리 전하여 퍼짐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언비천리’는 원래 ‘무족지언비천리(無足之言飛千里)로 쓰였는데 글자 그대로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라는 뜻이다. 소문이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을 전달함으로써 빠르게 퍼져나간다. 문제는 그런 소문이 사실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는 것이다. 이런 소문을 흔히 ‘가십’이라고도 하는데 특이한 것은 그 논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자리에 없을 때 나오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습관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자주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혹자는 “그냥 우리끼리 가볍게 한 이야기인데…”하면서 아니면 말고식으로 말을 쉽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십거리가 되어 그로 인해 힘들고 속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우리끼리 한 이야기이지만 그것으로 끝이 나지 않고 돌고 돈다.
우리 삶에 있어 가장 가깝게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가장 큰 상처를 주게 되는 가십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정말 모르고 아무 뜻도, 의도도 없이 하는 이야기다. 그냥 무료함에서 그런 이야기를 즐기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아주 계획적으로 악한 마음을 품은 채 의도적으로 안 좋은 소문을 퍼트리는 것이다. 이런 소문은 험담 또는 중상모략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흔히 헛소문(가십)이라는 게 바로 이와 같다. 한 사람에게서 또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되면서 때로는 좋지 않은 의도로, 때로는 무관심과 습관적으로, 때로는 사실이 아닌 것들까지 보태지면서 또 소문이 되고 심지어는 험담이 되고 나아가서는 ‘중상’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주위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무족지언비천리’인 것이다.
요즘같이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가 발달된 시대에는 더 말할 것 없이 말 한마디만 운을 띄워도 금방 스토리 하나가 쉽게 만들어져 확인조차 없이 급속도로 퍼져나간다. 때로는 좋은 소식도 퍼 나르지만 소문에 소문이 퍼져 악플이 줄을 잇고 그것 때문에 고통을 당하다 끝내 목숨을 끊는 경우도 종종 봐왔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일지라도, 아무리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더라도 맹렬하게 비난하는 소리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우리 속담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가 난다’ 우리 주변에는 사실이 아닌 말들이 너무 많이 떠돈다. 그런 유언비어도 자꾸 들으면 정말인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 이야기 들었어? 자기한테만 말하는 거야”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인데 자기만 혼자 알고 있어” “사실 이거 말하면 안되는 건데, 비밀 지킬 거지” 등등 이렇게 우리가 아무거리낌 없이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간접적으로나마 이런 험담을 듣는 당사자는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뜬소문을 가지고 부주의하게 습관적으로 말을 나누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이간’했는지 자신을 되돌아 볼 줄을 알아야 할 것 같다.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질하고,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간다”고 성경에 쓰여 있다. 남의 말 하는 것이 별식 같다는 말은 그것을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고 구미가 당긴다는 의미다. 그래서 남의 이야기를 할 때면 얼굴에서 빛이 난다. 눈도 반짝거린다. 심지어는 쾌감과 희열을 느끼고 만족감마저 든다. 너무 안타깝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혀에게 재주를 가르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말을 너무 많이 하지마라’ ‘비밀을 지켜라’ ‘혀를 움직이기 전에 잠시 생각해 보아라’ 하는 말을 항상 혀에게 가르쳐도 혀는 어느새 그것을 잊고 만다. 그것은 혀에게 뼈가 없기 때문이란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따뜻하기가 솜과 같다. 그래서 따뜻하기가 솜과 같은 말을 해야 한다. 좋은 말을 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야기하지 말자. 그것이 그 사람이 없다고 마음 놓고 험담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深頌 안 호 원
한국심성교육개발원장
심리상담사, 시인, 칼럼니스트
 

<평택시사신문>  창간호부터 시작해 문화·사회·정치 전반에 대한 다양하고 폭넓은 시각을 보여준 ‘안호원 칼럼’이 필자의 개인사정으로 인해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칼럼 게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써주신 필자에게 지면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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