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여년 세월의 산 증인 ‘평택의 보호수’
마을의 길흉화복 吉凶禍福 함께 하며 터줏대감으로 자리하다

▲ 은행나무(898년, 안중면 학현리)
예로부터 수령이 오래된 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신령한 존재로 인식해 마을 사람들 모두 신성시해왔다. 마을 입구에 서 있던 오래된 나무는 마을 사람들에게 힘든 일이 있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제일 먼저 알릴 수 있는 그런 마을의 터줏대감이자 신앙적인 존재였다. 사람의 수명이 길어야 1백년 정도인데 반해 나무의 경우 길게는 1천년도 더 돼 옛 사람들은 그렇듯 오랜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도 살아남은 나무에 대해 겸허하게 머리를 조아릴 줄 알았다. 이는 사람이 아닌 자연의 생명까지도 귀하게 여길 줄 알았던 우리 민족의 심성을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터줏대감이었던 마을 수호목(守護木)
현재 평택시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는 중 가장 많은 수종은 은행나무와 회화나무, 느티나무, 향나무 등이다. 각종 약재로도 쓰였던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릴 만큼 중생대 쥐라기 이후부터 현재까지 생존하는 가장 오래된 식물 중 하나다. 따뜻한 곳을 좋아하며 종자로 묘목을 양성하기가 쉽고 옮겨 심어도 잘 살아나며 어릴 때의 자람이 빠른 편이다. 오래 살며 수형이 크고 깨끗함은 물론 가을단풍이 아름답고 병해충도 거의 없어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으로 인해 정자목이나 풍치수, 가로수로도 많이 심어왔다.
회화나무는 주로 궁궐이나 관아, 향교, 서원, 양반집 등에 심어 매우 귀하게 여겼던 나무로 신목이라 하여 아무 곳에나 심지 못하게 했다. 조정에서는 3정승을 뜻하는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고 좌우에 아홉 그루의 멧대추나무를 심어 조정대신을 나타내기도 했다. 주로 전국 각지의 향교나 서원에 큰 나무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일을 가져오는  나무로 알려져 있고 중국에서는 출세의 나무, 서양에서는 학자의 나무로 알려져 있다. 예로부터 이 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집안에 학자가 나오고 부자가 된다고 해서 양반 집안에만 심어왔으며 우리 조상들은 잡신을 쫓고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의 역할을 하도록 회화나무를 마을 어귀에 정자나무로 많이 심었다.
느티나무는 수명이 길어 오래 살뿐 아니라 줄기가 곧게 자라면서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생김새도 좋고 목재로도 우수해 모든 면에서 으뜸인 나무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의 3대 우량목재로는 오동나무, 먹감나무, 느티나무를 꼽는데 마찰과 충격에 강하고 단단해 관재, 가구, 생활도구 등을 만드는 재료로 널리 쓰였다. 가로수와 조경수로 흔히 만나게 되는 느티나무는 우리 문화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예부터 영복, 귀목, 신목으로 받들어 봄에 트는 싹의 모양을 보고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
향나무는 심재가 강한 향기를 내는데 이것을 불에 태우면 더 진한 향기를 내므로 제사 때 향료로 널리 쓰였다. 전에는 시장에 향나무 심재토막이 향료로 많이 나오곤 했으나 현재는 가공향료 때문에 그런 광경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향나무 목재는 연필재, 장식재, 조각재, 기구재 등으로 이용되며 우물가에 향나무를 심는 관습이 있었고 지금도 향나무 종류는 정원수나 공원수 등의 용도로 널리 쓰인다.

전설을 간직한 마을사람들의 쉼터
평택의 보호수는 많게는 900여년의 수령을 간직한 나무에서부터 적게는 100여년의 수령을 간직한 것까지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특히 오래된 나무일수록 나무와 연관돼 전해오는 전설들도 많다.
평택의 보호수 중 가장 오래된 안중읍 학현리 은행나무는 수령이 898년으로 고려 명종 때 젊은 스님이 이곳을 지나다가 젊은 과부의 집에서 쉬게 되었는데 욕정을 참지 못하고 여인에게 손을 대다가 여자로부터 크게 꾸지람을 들은 후 고행을 하다가 생을 마쳤고 이후 부락 사람들이 스님을 측은히 여겨 죽은 자리에 은행나무를 심어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전설 중에는 나무의 잎이나 열매에 관한 전설도 많이 전해지는데 신대동 회화나무는 장마로 떠내려 온 뒤 봄에 꽃이 일제히 피면 풍년이 들고 층다리로 피면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있으며 서탄면 사리 은행나무는 나무에 열매가 열면 전쟁 등의 난리가 난다고 전해지는데 6·25전쟁이 나던 해에는 열매가 열었다고 한다. 또한 안중면 용성리 향나무는 예부터 잎이 무성하고 열매가 많이 열리면 풍년과 평화가 오고 잎이 병들고 수세가 약하면 흉년과 혼란이 온다고 전해지며 수령 730년인 진위면 동천리 은행나무는 가을에 단풍이 들 때 하루 이틀 사이에 나무 전체가 노랗게 물들면 다음해에 풍년이 들고 단풍드는 기간이 길면 가뭄이나 천재지변으로 흉년이 든다는 전설로 유명한데 음력정월 보름부터 왜가리와 백로가 날아와 번식하므로 조수보호구로도 지정됐으나 최근에는 왜가리와 백로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나무를 베었다가 화를 당했다는 전설도 많다. 고덕면 방축2리 707번지 회화나무는 나무를 해치는 사람은 해를 입는다하여 부락에서 설날에 고사를 지냈고 고덕면 두릉1리 회화나무는 나무를 꺾거나 해치면 벌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기순이라는 사람이 가지를 꺾고 망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고덕면 두릉2리 음나무 9본에는 나무를 베면 벌을 받는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장당동 123번지 음나무는 마을정자 노거수로 조선시대 전란 시 왜적들이 이 나무를 베어 배를 제작하고자 했으나 작업도중 원인 모르게 사고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근주민들이 매년 고사를 드리며 마을 수호목으로 신성시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또한 현덕면 덕목4리 754번지 느티나무는 일제강점기 왜병이 무기를 만들기 위해 이 나무를 베려고 하는 찰라 번개와 천둥이 쳐서 베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이밖에도 팽성읍 객사리 170-2번지 팽성읍사무소 내 향나무는 3본이 나란히 서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팽택현 소재지로서 현감이 죄인을 심문할 때 형틀로 사용했다한다. 팽성읍 두1리 산 10번지 해송은 아들을 낳기 위해 백일동안 정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으며 팽성읍 원정리 880-5번지 느티나무에는 이 마을에 방 씨가 많이 살고 있어 보리가 퍼지듯 방 씨 집안이 번성하라고 보리 3말을 나무 밑에 넣고 심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진위면 봉남1리 166번지 진위향교 내 회화나무는 진위향교 건립 후에 심은 것으로 1945년 8월 15일 이전에는 밤마다 나무가 울었는데 해방된 이후에는 울지 않았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평택의 보호수는 모두 64본
평택에는 현재 모두 64본의 보호수가 지정돼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나무는 안중읍 학현리 277번지에 있는 마을 공동소유의 은행나무로 수령이 898년이 되었으며 높이 12미터, 둘레 8.5미터의 위용을 자랑한다.
진위면 동천리 산 563번지 무봉산 자락에 있는 은행나무는 수령이 730년 됐으며 진위면 마산1리 852번지 오룡동 느티나무 2본과 고덕면 두릉1리 188-2번지 회화나무, 현덕면 덕목4리 754번지 느티나무의 수령은 각각 630년이다.
도일동 95번지에 나란히 서있는 향나무 5본은 590년의 수령을 자랑하며 서탄면 사리 558번지 은행나무는 580년, 평택시 장당동 123번지 음나무는 568년, 평택시 비전동 626-3번지 은행나무는 530년, 현덕면 방축2리 느티나무도 526년의 수령을 갖고 있다.
평택의 보호수 중 가장 오래된 안중읍 학현리 은행나무는 충북 괴산군 청안면의 천연기념물 제165호로 지정된 수령 950여년의 은행나무와도 거의 비슷한 수령을 가지고 있는 나무로 국내에서 900여년이 넘은 은행나무들이 대부분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안중읍 학현리 은행나무도 900여년의 수령을 갖고 있으므로 이제는 천연기념물 지정을 고려해야 할 때이다.

 

▲ 음나무(180년, 고덕면 두릉2리)
▲ 회화나무(230년, 진위면 하북1리)
▲ 느티나무(290년, 안중읍 덕우2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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