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피리

나는 초등학교 3 학년 김현준입니다.
학교공부가 다 끝날 때가 되어가는데 창밖에 봄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날씨도 쌀쌀합니다.
나는 금세라도 아빠가 우산을 들고 복도에 와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공부가 잘 되지 않습니다. 오늘도 아이들은 아빠를 보면 나에게
-야! 김현준 니네 할아버지 우산 가지고 오셨다! 라고 놀려댈 것이 뻔합니다.
하지만 지금껏 나는 단 한번도
-아니야!  할아버지가 아니고 우리 아빠야! 라는 말을 아이들에게 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아빠에게도 아이들이 아빠를 할아버지라고 부른단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말을 아빠에게 하면 아빠가 다시는 학교에 오지 않을 수도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아빠를 보고 할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은 싫지만 아빠가 학교에 오지 않는 것은 더 싫습니다. 
비는 더 세차게 옵니다. 선생님 한번 쳐다보고 복도 한번 쳐다보고 정신이 없습니다. 선생님 말씀이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그런데 집에는 우산이 하나 밖에 없어서 아빠랑 함께 집으로 돌아갈 때면 아빠는 나에게만 우산을 씌워주고 아빠는 내리는 비를 다 맞고 그냥 갈 것입니다
-아빠! 아빠도 같이 우산 써야지
-난 괜찮아 ! 괜찮아 !…
아마도 아빠는 내가 추워할 줄 알고 긴팔 ‘잠바’도 하나 가지고 올 것입니다.
우리아빠는 미군부대에 다녔습니다. 아빠는 영어를 잘 해서 미군부대 안에서 통역일을 했습니다. 너무 일을 열심히 하느라 장가가는 일도 늦어져 마흔 살이 다되어서야 겨우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내가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 부대에서 장티부스 예방주사를 맞고 집에 돌아온 아빠는 몸에 열이 많이 난다면서 저녁밥도 먹지 못하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러더니 열은 더 높아지면서 아빠는 헛소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병원으로 전화를 해서 응급차를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웽웽웽웽…
엄마는 어린 나를 주인집에 맡기고는 아빠와 함께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 날 엄마는 병원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병원에 간 아빠는 정신을 잃고 사흘 동안 깨어나질 못했습니다. 엄마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빠가 주사를 맞은 날 함께 주사를 맞은 사람들 가운데 아빠와 같이 열이 나고 아픈 사람이 있는 지 알아보았지만 모두가 다 멀쩡하다는 소식만 들려왔습니다. 미군부대에도 연락을 했지만 주사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입니다. 
한 달 넘게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아빠는 겨우 퇴원했지만 너무 높은 열병 때문에 말을 잘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제 더는 미군부대에 나갈 수도 없는 딴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한 달 사이 아빠는 10년이 아니라 50년은 늙어 할아버지가 되어버렸습니다. 머리는 하얗게 쇠고 이빨도 빠졌습니다. 우리 가족을 아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걱정을 하며 미군부대를 상대로 고소를 하라고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엄마가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대신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엄마는 해가 뜨기 전 어둑어둑할 때 집을 나서서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배달하는 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할 줄 모르던 아빠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엄마가 하는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습니다. 매일매일 아침밥도 아빠가 차려주었고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도 아빠가 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집을 나가서 일을 시작한 엄마가 점심때가  지나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가 되면 아빠와 나는 골목길에 나가 엄마를 기다립니다. 아빠가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다 헐어빠진 고물 자전거지만 혹시나 혹시나 하고 아빠가 몸이 좋아지면 탈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버리지 않고 놓아두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발이 말을 잘 듣지 않아 골목 안에서 맴을 돌던 아빠는 일주일이 지나자 행길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자전거 짐칸에 방석을 깔면 아빠가 운전하는 자전거는 내 ‘자가용’이 되었습니다. 엄마와 아빠를 아는 사람들은 서로서로 엄마를 도와주면서 엄마가 하는 배달 일은 두 배나 더 바빠졌습니다.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우리가족에게는 큰 힘과 보탬이 됩니다. 엄마가 배달하는 물건이 많아지자 아빠가 자전거 짐칸에 물건을 싣고 다니며 엄마를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봄이 오고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엄마는 새벽같이 일을 나가고 나는 학교에 가고나면 아빠 혼자 집에 남습니다.
엄마도 없고 나도 학교에 가고나면 아빠는 호주머니에서 뿔피리를 꺼내서 붑니다. 내가 사먹은 과자봉지에서 나온 ‘팬파이프’ 모양으로 만든 ‘가짜배기’ 뿔피리지만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아빠 장난감입니다.
아빠는 집을 나서면 뿔피리를 꺼내서 붑니다. 누가 보든 말든, 누가 듣던 말든 신경을 쓰시지 않습니다. 뿔피리는 아빠친구입니다. 박자도 틀리고 가락도 틀려 무슨 노랜지 알 수가 없는 오직 아빠만 아는 노래입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아빠는 혼자 비를 맞으며 뿔피리를 불고 다닙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아빠 바짓가랑이는 온통 흙투성이입니다.
-우리 집에는 애가 둘이예요.
엄마 눈에 눈물이 맺힙니다.

2012년
저는 어느새 나이가 38살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건강하십니다.

 

이동진은 홍익대 미대 卒, 한광고등학교 교사, MBC창작동요제 대상곡 ‘노을’의 작사가다.
※ 블로그 http://blog.naver.com/jaa_yoo(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