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3.1만세운동, 모두 함께 기려야”

경기남부지역 가장 앞선·큰 규모
기념탑·기념관 건립이 초석 될 것

 

 

“평택은 경기남부지역에서 가장 먼저 3.1만세운동이 벌어진 곳이자 가장 광포狂暴하게 일어난 지역인데, 이를 기념하는 조형물 하나 제대로 없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평택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을 추진 중인 정수일 상임추진위원장은 소위 ‘중앙’에서 활동했던 젊은 시절을 뒤로하고 고향 땅 평택에 내려왔다. 그리고 그는 통탄했다. 평택의 3.1만세운동이야말로 그 시점이나 규모에서 의미가 컸지만 정작 주변 지역과 비교하면 그 일을 기념하는 사업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거침없던 젊은 시절
젊은 시절 정수일(79) 위원장은 거침없었다고 한다. 실례로 그의 스승인 함석헌 선생과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입대 전 우연한 기회에 천안에 있는 함석헌 선생의 사과농장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3개월 동안 매일 아침 천안 시내로 가서 거름 똥을 한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고 다녔어요. 여섯 명으로 시작했던 교육 인원은 점차 줄었고 결국 저 혼자만 남았죠. 기어코 약속 기간을 채우자 선생님이 저를 보고 왜 도망가지 않았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이러한 스승의 물음에 얼마 남지도 않은 기간 채우는 것이 뭐가 어렵다고 도망가느냐 반문했다는 그의 패기는 실로 대단했다. 군 전역 후 함석헌 선생과 재회한 일도 평범하지는 않았다.
“전역한 뒤에 사과농장을 운영했는데 한번은 농약을 주다가 졸도해버렸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서울로 내뺐죠. 무작정 함석헌 선생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함석헌 선생 집에서 머물며 잡지를 배포하고 원고를 얻으러 다니던 그는 점차 운동권 인사들과 얼굴을 익히게 된다. 이리저리 심부름하러 다니니 어느새 운동권에서 활동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민주수호전국청년학생연맹과 민주수호국민협의회에서 활동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민주화 운동권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갔죠. 1980년대 후반에는 농민을 괴롭혔던 수세를 폐지하기 위한 운동을 벌였습니다. 여의도 일대를 꽉 채운 3만여 명의 농민을 빌딩 위에서 내려다 보니 과연 장관이었습니다. 결국 수세는 폐지됐죠”
이후 1990년대 초반 민중당에서 이재오와 한명숙, 김문수, 김부겸 등 쟁쟁한 이들과 정치의 뜻을 펼치려던 그는 꿈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광포한 평택의 3.1만세운동
지역에 내려와 지역민상담소, 집단민원연구소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던 정수일 위원장은 주변 도시를 돌며 3.1만세운동을 기념하는 사업이 활성화된 것을 느꼈다.
“예산에서 열리는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행사에 방문할 적마다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어요. 당시 평택에는 관련 사업이 전혀 없었습니다. 1990년대부터 관련 사업을 펼치려 노력했지만 2013년에 와서야 3.1운동 표식을 세우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죠”
그는 평택의 3.1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경기남부지역에서 평택보다 일찍이 3.1만세운동을 벌인 곳은 없었습니다. 용인이 3월 28일, 천안이 3월 30일, 안성이 4월 1일 3.1만세운동을 펼쳤죠. 평택은 이보다 훨씬 앞선 3월 9일에 첫 만세운동을 벌였습니다”
정수일 위원장은 시기적 요인뿐만 아니라 그 범위와 3.1만세에 참여한 인원 또한 가장 많다는 것이 평택 3.1만세운동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각계각층의 시민이 한데 모였으며, 평택역에 3000여명에 달하는 엄청난 인원이 모인 일도 흔치 않았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평택 3.1만세운동이 상당한 의미가 있죠”

지역 선인의 ‘얼’ 기리자
정수일 위원장은 사실 100주년이 되는 내년까지 3만 1390명의 시민을 기념사업에 동참하게 하고자 한다. 하지만 부지 선정 문제로 수년이 지체됐고 더는 미룰 수 없었다.
“기념탑은 100주년이 되는 내년까지 무조건 건립해야 합니다.  또 100주년기념사업에 있어서 사회 분야별로 광범위한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그는 100주년기념사업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이 사업을 기점으로 더욱 광범위한 기념사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100주년기념사업과 공원 조성이 평택의 3.1운동을 기념하는 모든 사업의 초석이 될 것입니다. 이후에는 5년에 한 번씩이라도 관련 시설을 건립해 꾸준히 저변을 넓혀가야죠. 또 평택에서는 모두 30여 곳에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났는데 조사를 통해 그 지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표식을 세우는 것 또한 하나의 목표입니다”
정수일 상임추진위원장은 귀향한 뒤 20여 년간 평택3.1만세운동을 선양하는 꿈을 키워왔다. 또 이것이 모든 평택시민의 꿈이라고 생각해왔다. 평택의 얼과 선각자의 정신을 계승·발전해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평택의 3.1운동이 광포했던 그 규모에 걸맞게 기억되는 날이 다가오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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