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울고’

“역사교사도 고장에 무지한 부끄러움”
“보는 것이 아닌 행하는 교육이 중요”

 
“요즘 아이들의 정보 습득력은 어른들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받아들여진 정보들이 여과 없이 아이들 뇌리에 새겨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은혜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김일 교사는 요즘 아이들을 마땅찮게 말하는 기성세대들을 볼 때마다 맘 한구석이 무거워진다. 드세다 해도 아직 어린 아이들일 뿐이고 참 착하고 순한 녀석들인데 기성세대들이 세대차를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틀린 것으로 규정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교직에 몸담은 지 이제 10년이 된 김일 교사는 ‘역사토달기’ 동아리 지도교사로 학교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그 역시 처음부터 이러한 동아리 활동을 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은혜고등학교에 역사 교사로 부임했는데 막상 나 자신 스스로도 평택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더군요. 아무도 가르쳐주는 분이 없었거든요. 진학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시험에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자신이 사는 고장에 대해서도 모른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는 가르치는 교사마저도…”
자신과 같은 길을 적어도 내 제자들은 걷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한 김일 교사는 즉시 ‘역사토달기’라는 현장 활동 위주의 동아리를 만들고 아이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염려와는 달리 학생들의 호응이 컸다.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었지만 의외로 역사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이 많았고 집중도도 높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교내 최고 인기 동아리로 자리 잡게 된 것.
‘역사토달기’의 활발한 활동은 아이들의 학업 보다는 재능과 미래 가능성을 보는 입시제도가 도입되면서 예전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성과로 이어졌다. 수도권 유수의 대학은 물론 서울대학교에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입학하는 학생까지 생기는 성과를 거둔 것.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종래의 입시제도에 익숙해져 있는 학부모님들은 처음엔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일정부분 성과가 알려지자 이제는 적극적으로 믿어주고 후원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동아리 활동의 근본이 역사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 재고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는 도구로 변질되어서는 곤란하겠죠. 하지만 현실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진학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 좋겠죠”
동아리 활동은 철저하게 자체 노력으로 이뤄진다. 특히 재정여건에 따라 학생들의 활동 범위가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어 지도교사의 역량에 따라 동아리의 성패가 좌우되기도 한다.
‘역사토달기’는 이러한 재정지원을 내부보다는 외부에서 찾았다.
“여기 저기 수많은 제안서를 제출했죠. 다행히 아직까지 교육에 대한 지원은 인색하지 않아 여러 곳에서 저희 제안을 받아들여 넉넉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아이들에게 역사를 알게 해주는 소중한 체험시간을 줄 수 있었습니다”
왕따와 폭력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무기력증’이라고 말하는 김일 교사는 10년 교직 생활에 수많은 아이들을 겪었지만 아직 잊지 못하고 아픔으로 남아 있는 제자가 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목표도 없고 의욕도 없는 극심한 무기력증에 빠진 아이였습니다. 결석을 밥 먹듯이 해서 밤늦은 시각이나 심지어는 새벽에도 학생 집에 찾아가서 설득하고 위협도 하고 갖은 방법을 다 써봤지만 소용이 없더군요. 결국 어쩔 수 없이 자퇴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당시 찾아온 부모님의 답변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고맙다고 하더군요. 비록 자퇴로 끝났지만 선생님처럼 우리 아이에게 신경 써준 사람이 없었다고…”
“선생님들은 이중인격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는 강하고 냉정하게 이야기하지만 막상 돌아서서는 울어버리는, 제자를 자퇴시켜야만 하는 스승의 심정을 누가 알겠습니까”
지나치게 보는 것 위주로 발달해있는 정보화시대의 폐해를 행하는 것으로 바꿔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 교사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김일 교사. ‘역사토달기’ 활동을 통해 얻어진 소중한 것들을 은혜중학교를 넘어 평택 전 지역으로 확산하고픈 꿈을 이루기 위해 밤늦은 시간에도 불이 꺼질 줄 모르는 그의 책상 위에는 내일의 희망이 자라고 있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