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내 삶을 지탱하게 만든 원동력”

노래하며 마음의 짐 덜고 사회와 유대 맺어
장애인과 노인들 위해 봉사하는 삶 살고파

 
한 시대를 풍미하는 노래에는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서민들의 꿈과 사랑과 애환이 담겨있다. 때문에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현재의 마음을 달래고 그러는 가운데 노래 가사와 자신의 처지가 딱 맞아 떨어질 땐 급기야 노래를 부르다 목 놓아 울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노래가 가지는 치유의 효과이며 대중가요의 힘이다.

노래로 웃고 울던 20여년 세월
“1990년부터 노래교실 강사를 시작했으니 벌써 20년도 넘었네요. 서울에서 살다가 고향에 내려와 여성회관과 문화원, 주민센터, 장애인회관 등에서 노래교실 강사를 했죠. 지금은 많은 부분을 정리하고 신협과 신평동주민센터, 장애인회관에서만 강습을 하고 있지만 예전에 비해 늘어난 시간들은 주로 책을 읽거나 제 자신의 내면을 채우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늘 바쁘게만 살아왔던 제게 지금은 귀한 충전의 시간인 셈이죠”
노래교실 현희수(58) 강사는 20여년의 세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바쁘게 지냈던 지난날들이 결코 후회스럽지는 않다고 말한다. 노래가 있어 역경을 이길 수 있었고 노래가 있어 현재도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좌절하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현희수 강사에게 있어 노래란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자 삶의 의미 그 자체다.
“회원들 중에는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분들도 많습니다. 나이가 주는 허탈감에 빠진 분들도 많구요. 그럴 때마다 그분들이 노래를 통해 힘을 얻게 되는 걸 곁에서 지켜보면 저 역시도 힘이 생기곤 하죠. 노래교실에서는 예전 노래뿐만이 아니라 강남스타일같이 요즘 나오는 신세대 노래도 함께 부르며 말 춤을 추기도 합니다. 요즘 노래를 부르며 나이 드신 분들이 젊은 세대와 어울리고 다시 사회 속에서 어울려 살아가게 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죠”
현희수 강사가 지도하는 노래교실에서는 단순히 노래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노래를 통해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사회 속에서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회원들 간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형님, 동생 하는 유대관계를 만들고 노후를 위로하며 함께 살아갈 평생지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남편 사별 후 세 아이 키우며 살아
“장교출신이던 남편이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해 제 나이 서른여섯에 혼자가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5학년 된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갈 일이 캄캄하기만 했죠. 그래도 마냥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나만 바라보는 아이들 때문이라도 어떻게든 아이들을 키우며 먹고살아야 했으니까요. 사회생활이라고는 해보지도 않은 제가 할 수 있는 건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음악을 하는 일밖에 없었죠”
현희수 강사는 그동안 자신이 혼자 아이들을 키운다는 사실을 마음 놓고 말할 수 없었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혼자 사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알게 모르게 작용할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희수 강사는 아이들을 키우며 혼자 살아가기에 서울은 자신의 수준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이사를 결심했고 그때 제일 먼저 떠오른 곳이 고향인 평택이었다. 다른 지역보다 나고 자란 고향이라면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제가 일을 하며 아이들과 살 수 있도록 품어준 곳이 평택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늘 감사한 마음이죠. 노래교실 강사로 있는 20여 년 동안 한 번도 강의를 빠진 적이 없어요.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강의시간이 되면 나와 웃으며 노래 부르곤 했죠”
현희수 강사는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오는 동안 노래를 통해 위로받는 일이 많았다고 털어놓는다. 아이들을 건사하느라 저녁이면 밖에서 변변히 시간을 보내본 적도 없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아이들이 모두 잘 성장해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지금은 비우고 재충전해야 할 때
“이제는 아이들이 제 보호자가 되었어요. 돈보다도 엄마가 즐겁고 행복한 것이 제일 중요하다면서 오히려 저를 위로하곤 하죠. 노래교실 회원들도 긴 세월을 함께 하다 보니 이젠 가족 같아 서로 의지하게 되니 노래를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는 제 자신이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살 길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하며 죽어라고 매진했던 일이 제게 살길과 보람을 함께 찾아준 셈이죠”
현희수 강사는 성실하고 진실하게 회원들과 나눈 교감이 현재의 행복을 이끌어냈다고 말한다. 비록 20여년 강사생활을 하는 동안 안면 마비도 겪었고 시끄러운 음악에 한쪽 귀가 잘 안 들릴 만큼 직업병도 생겼지만 회원들과 함께 노래 부르며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현희수 강사는 충분히 행복하다.
“아이들 키우느라 아직 노후대책도 변변하게 못했지만 그래도 이젠 봉사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내가 평택에서 받은 것이 많은 만큼 때가 되면 저도 다시 평택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거든요. 제 관심은 주로 장애인들과 노인들에게 향해 있는데 건강이 허락된다면 그분들과 노래 부르며 그렇게 살고 싶어요”
이제는 많은 것을 비우고 재충전할 시기라고 말하는 현희수 강사. 살아오는 동안 혹여 쓸쓸해지면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달랬다는 그녀는 앞으로 자식들이 곁을 떠나 혼자가 될 때를 대비해서라도 혼자 잘 지내는 법을 더 많이 연구해야 한다며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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