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정신만 있다면 나이쯤이야”

연봉 8천만 원 대기업 간부, 실업자로 전락
말단 공무원이지만 봉사하는 데 보람 느껴

 
‘도전’이라는 말 이면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도전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희망이 있고 희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첫 걸음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할 걱정은 없겠지만 그에 따른 희망도 없다. 정말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인정하고 극복할 줄 아는 사람이다. 

53세에 공무원시험 도전 ‘수석’
“어느 날 갑자기 실업자가 되었어요. 집에서는 뭐든 자격증이라도 따라고 했지만 자격증만 딴다고 일이 거저 생기는 건 아니니까요. 전 시험과 동시에 일자리가 생기는 직업이 필요했고 그래서 쉰 세 살의 나이로 처음 공무원시험 준비를 시작했어요. 하루 12시간씩 꼬박 휴일도 없이 공부했어요. 헌 책방에서 싼 가격에 수험서를 사고 개정된 것들은 최신판으로 구입해 한 과목당 7~8권씩을 공부했죠”
올해 8월에 발령받아 팽성읍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재흥(54) 씨는 이제 겨우 발령 석 달째로 접어든 말단 공무원이다. 비록 나이 50대 중반에 공무원 생활을 처음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자부심을 느끼는 건 5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시험을 본 70여명의 동기 중 수석을 했다는 사실이다.
“젊은이들의 자리를 제가 차지했다는 사실이 조금 미안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도전하면서 실패도 겪고, 또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 다시 도전해 이뤄냈다는 사실은 스스로도 참 뿌듯해요. 이제 새로운 조직에 뿌리를 내렸으니 신입 공무원으로서 성실하게 일해야죠”
이재흥 씨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대기업 간부로 진급했을 만큼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리고 여러 대기업에서 서로 스카우트 할 정도로 실패를 모르고 살았던 시간도 있었다. 그런 그가 도전을 했다가 실패를 맛본 것은 9급 공무원 시험에서의 낙방이 처음이었다고.
 
연봉 8천만 원 대기업 간부
“20대 중반에 현재의 LG전자에 입사해 회계업무를 맡게 되었어요. 그런데 입사 다음해에 바로 회사 사정으로 인해 선배들이 전부 빠진 상황에서 혼자 회사의 연말결산을 맡게 됐죠. 시간은 없고 해야 할 분량은 많고 상고 출신이 아니라 주판과 암산도 안 되고, 하는 수 없이 왼손으로 계산기 치는 법을 연습했죠. 인천에서 서울로 지하철 출퇴근하며 죽어라 며칠 연습하니 결국 되더군요. 그때부터 오른손으로는 장부를 넘기고 왼손으로는 계산기를 치며 혼자 그 많은 일을 다 끝냈어요. 지금도 왼손으로 안보고 계산기 치는 건 누구보다도 잘 합니다”
이재흥 씨는 당시 뛰어난 능력으로 인해 30대에 이미 몇 번의 진급을 거치며 승승장구 했다. 그리고 신용카드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1988년에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LG신용카드의 실무 책임을 맡았다.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신용카드에 관한 책이 없어 영어로 된 출판물을 사서 공부하며 카드 업무를 진행해나가기도 했다.
“LG카드에서 시작해 아메리칸익스프레스카드, 현대카드까지 스카우트되면서 카드에 관한 업무를 맡게 되었어요. 그러다 1998년에 IMF가 터지고 나니 당시 연봉이 8천만 원 이었던 제게 당장 압력이 들어오더군요. 절 스카우트한 사람은 이미 회사를 그만둔 상태여서 부하직원들을 모두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남게 하는 조건으로 저는 그만 둘 수밖에 없었어요. 참 암담한 시절이었죠”
이재흥 씨는 40대 중반에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말한다. 이후 그동안 쌓아온 기획력을 바탕으로 학원이나 병원의 기업플랜을 설계하는 등 다양한 일들을 맡아 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도에 송탄에 자리를 잡고 난 뒤부터는 본격적인 실업자로 전락해 이런저런 생각 끝에 공무원 시험 준비에 나서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아직 멈추지 않는 도전정신
“공무원 시험에 나이제한을 없앤 건 나라에서도 나이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인정했다는 거죠. 저도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나이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 사람의 생각이 얼마만큼 젊고 긍정적인가 하는 게 문제로 작용할 뿐이죠. 누구든 생각만 바꾸면 다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이재흥 씨는 공무원이 되고 난 후 지난 여름 태풍이 왔을 때는 밤새워 대민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힘든 민원이 들어와도 친절하게 응대해 실마리를 풀어간다. 물론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상사들에게도 깍듯하게 대하는 것은 조직사회의 기본이기에 그것 역시도 철저하게 지킨다. 사회적 경험이 많아 어떤 일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잘 처리하는 건 나이 많은 신입 공무원으로서 그가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이다.
“요즘도 쉬는 시간 틈틈이 책을 읽는데 며칠 전부터는 리처드도킨슨의 ‘이기적유전자’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책을 읽으며 제 자신을 계발하는 데 투자하는 거죠. 앞으로는 언젠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한권 번역해볼까 하는데 출판사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또 한 번 도전해 보려구요”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도전해 성공한 뒤에도 끊임없이 삶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재흥 씨, 예전에는 기업체에서 오로지 진급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그는 공무원이 되고 난 뒤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며 도움을 주는 것이 이렇게 좋은 일인지 몰랐다며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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