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생명들이 한 날 한시 일제히 울어버리는 국경일 하나 갖고 싶다 뎅뎅- 종소리 울리면 토끼를 잡아채던 범도 구슬 같은 눈물 뚝뚝 흘리고, 가슴 철렁하던 토끼도 범의 앞가슴을 두드리며 울고, 포탄을 쏘던 병사의 눈물에 화약이 젖고, 겁먹은 난민도 맘 놓고 울어 버리고, 부자는 돈 세다 울고 빈자는 밥 먹다 울고, 가로수들도 잔잔히 이파리 뒤채며 눈물 떨구는, 세상 생명들 다시 노여워지려면 꼭 일 년이 걸리는 그런 슬픈 국경일 하나 갖고 싶다”
- 반칠환 ‘눈물의 국경일’ 전문 -

어느 비평가는 시인을 ‘지상의 천사’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시인의 위상을 높이 산 것이지요. 나 역시 이 말에 깊이 동의합니다. 오래 전 플라톤은 시인 추방론을 내세웠습니다. 시인은 진리보다 모방을 일삼는 자이므로 이상적인 세계, 즉 이데아의 왕국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것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시의 본질과 예술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증명해낸 많은 사람들에 의해 다시 위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 먼 역사까지 가지 않더라도 시인이 이 지구상에 있어야 할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시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평화는 사람을 위협하는 총이나 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흘리는 눈물만으로도 충분히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시는 잘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돈이나 협박으로 성사되지 않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성사되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 말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 세계를 떠도는 난민들의 이야기가 연일 텔레비전 뉴스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죽어가고, 가족이 헤어지고, 오로지 살기 위해 긴 시간을 인내하며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 그러나 그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차가운 냉대와 멸시입니다. 인간으로서의 대우는 상상할 수도 없지요. 상대방에게는 그들이 인간이 아닌 자신들의 권리를 빼앗는 존재로 여겨질 뿐이니까요.

그래서인지 이 시를 읽는 마음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집니다. 이 시는 단순히 동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약자와 강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강자가 약자를 위해 눈물을 흘리거나, 혹은 반대로 약자가 강자의 가슴을 두드리며 울음을 터뜨리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상상할 수도 없는 일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약자를 잡아채던 강자도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자칫 잡아먹힐 뻔 했던 약자도 강자의 가슴을 두드리며 울고, 상대방을 죽이는 화약도 병사의 눈물에 젖어 쓸모없어지고, 겁먹은 난민도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그런 국경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시인의 말처럼 그렇게 울던 생명들이 다시 노여워져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약육강식의 세계로 돌아가려면 일 년이 걸렸으면 좋겠습니다. 국경일은 일 년에 한번 씩 돌아오는 것인 만큼 매일 매일이 그렇게 평화로웠으면 좋겠습니다. 지상의 천사가 전하는 말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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