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에서 새롭게 시작된 ‘제2의 인생’

아이 가슴에 묻었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어
혼자 헤쳐 나가도 현실 직시하고 당당해야

 
우리가 그저 무심히 보게 되는 한 사람 한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어떤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까. 그 많은 사연 중에서도 특히 인간으로서의 감내해야만 했을 모진 고통의 흔적을 우연히 엿보게 될 때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사람의 손을 잡고 토닥토닥 위로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여행사는 여성의 섬세함이 장점
“여행사는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특히 유리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 플랜을 짜주는 사람의 경험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여행을 위한 준비를 할 때는 사전에 꼼꼼하게 체크하고 결정할 필요가 있지요”
대일관광여행사(모두투어 평택점) 지영미(52) 대표는 어떤 고객의 질문에도 답변을 척척 해낸다. 그녀의 자신에 찬 대답들은 그녀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는 것으로 고객들의 행복한 여행을 위해 섬세하고 깐깐하게 모든 과정을 체크하는 그녀의 여행상품은 한번 찾은 고객들이 다시 그녀를 찾는 계기로 이어지는 게 다반사다.
“어떤 호텔이 바다가 잘 보이는지 알기 위해서는 직접 그곳을 둘러보고 온 사람이라야 제대로 알 수 있죠. 거기에 식사 메뉴는 물론이고 습한 기운이 저층부터 올라오기 때문에 객실 위치를 선정하는 것 까지 꼼꼼하게 챙겨야 최상의 여행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런 것들이 바로 노하우가 필요한 부분이죠”
지영미 대표는 여행사 경리부터 시작해 현재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23년이라는 경력이 말해주듯 그녀는 전세·통근버스는 물론 국내와 해외여행, 신혼여행, 골프레프팅까지 은행 빚 하나 없이 당당하게 사업을 이끌어왔다. 그러나 숨 돌릴 틈 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 문득 멈춰서 되돌아 본 지점에는 여행사가 있어 절박한 삶을 연명했던 막막한 지난시절도 있었다.

막내 하늘로 보낸 뒤 일에 매진
“오래전에 당시 3살이었던 막내아이를 잃었어요. 김에 밥을 싸서 먹였는데 그게 기도를 막은 거죠. 그날따라 아픈 아이를 종일 집에 놔두고 공장에 일을 하러 갔다 와서 식구들이 김에 밥을 싸서 먹었는데 아파서 아랫목에 누워있던 아이가 그 밥을 먹은 거예요. 설거지 하고 들어오니 아이 상태가 이상하더군요. 그길로 축 쳐진 아이를 들쳐 업고 동네 약국으로 뛰어갔지만 아이는 이미 죽어있었어요”
그때 평생 흘릴 눈물을 다 쏟아냈다는 그녀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눈시울을 붉힌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자식을 가슴에 묻은 기억은 아직도 가슴 한켠에 생생하게 남아 한번 씩 건드려질 때마다 불에 덴 듯 새삼 아파오기 때문이다.
“결혼 초기에 사업에 실패한 남편은 친정집에서 간신히 마련해준 전셋집까지 노름으로 탕진하고 떠돌아다녔어요. 당시 전 3살, 5살이었던 아이들 둘을 데리고 월세 방을 전전 했는데 전기세와 수도세 낼 돈은 고사하고 쌀하고 연탄 살 돈도 없어서 아이들과 굶으며 냉방에서 지내기 일쑤였죠. 아이가 하늘나라로 가고 난 뒤에는 한동안 넋을 놓고 살았었는데 그래도 큰 아이는 키워야하니까 어떻게든 살아야 했어요.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게 여행사였는데  뭘 하는 곳인지도 몰랐지만 여행이라는 단어는 마치 제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 같았죠”
지영미 대표는 더 이상 남편을 견디지 못하고 큰 아이를 데리고 야반도주해 기도원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그러나 운명에 이끌리듯 여행사에 들어간 뒤부터는 마치 주린 배를 채우는 사람처럼 여행사와 관련된 일들을 닥치는 대로 공부하고 습득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여행사는 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고 절박함이자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숨통이었기 때문이다.

바닥에서부터 이뤄낸 값진 현재
“월급 65만원을 받으며 일해도 여행사에서 일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저와 상담한 고객들은 반드시 계약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최대한 고객의 입장에서 여행상품을 선택하고 계획을 짜주었죠. 그래서인지 저와 상담한 고객들은 항상 저와 함께 여행가길 원하더군요. IMF 이전에는 정말 여행의 황금기여서 주로 해외 신혼여행 상품을 많이 팔았죠”
남편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다는 그녀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일에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여행자들을 인솔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사업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고 아들도 이젠 20대 중반의 청년으로 장성해 그녀의 시름을 덜어주고 있다. 살아가며 의지를 잃지 않기 위해 마라톤에 도전했다는 지영미 대표는 오는 12월 20일경 ‘거북마라톤 동호회’ 회장에도 취임할 예정이다.
“혼자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현실을 직시하고 당당하게 대응하면 길이 열린다구요. 아이가 있다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라도 신앙 하나쯤은 가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저도 혼자 아이 키우고 일하면서 힘들었을 때 신앙의 힘으로 견딜 수 있었거든요”
힘든 역경을 딛고 열정 하나로 앞만 보고 달려온 지영미 대표, 인터뷰를 끝내고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에는 그동안 흘린 눈물보다 더 값진 희망으로 무장하고 세상 앞에 당당히 서 있는 그녀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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