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암 환자의 ‘오늘’과 함께 합니다”

떠나는 이들에게 한 번 더 사랑을 전해
자신의 내면이 더 성숙해지는 호스피스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환자가 부자연스러운 연명을 위한 의료행위를 하지 않고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치료를 하면서 심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도움을 주어 인간적인 마지막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목사 남편과 시작한 호스피스
“처음엔 목사인 남편과 함께 지역을 위한 봉사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당시만 해도 지역에 어려운 이웃들이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시작한 게 말기암 환자들을 보살피는 거였어요. 그때는 체계적인 계획도 없이 무조건 생활정보신문에 광고부터 냈죠. 말기암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냈더니 당시 광고를 보고 꽤 많은 요청이 왔었어요”
평택호스피스자원봉사자 강정혜(57) 씨는 남편인 박종승 목사와 함께 2000년부터 평택에서 호스피스 사역을 시작했다. 호스피스라는 말은 물론이고 복지라는 말도 다소 생소했던 때이니 만큼 초창기 이들의 봉사는 장르를 불문하고 이어졌다. 현재와 같이 말기암 환자들만을 위한 봉사는 2003년부터 시작했다고.
“현재 평택호스피스자원봉사자는 23기예요. 졸업생만 해도 벌써 1천 명 정도나 되죠. 15기 까지는 1회에 40~50명 씩 졸업하곤 했었는데 점점 봉사자 수가 줄어들고 있어요. 살기가 어려워진 것도 있지만 직업이 세분화되다 보니 호스피스 보다는 대부분 요양사나 간병사로 일을 하시기 때문이죠”
강정혜 씨는 호스피스로 일하며 집에서 투병생활을 하는 분들을 위해 가정방문을 하거나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위해 병원에 상주하며 말기암 환자들이 평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만해도 환자나 유족들과 함께 많이 울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전문 호스피스로 말기암 환자들이 가장 편안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혼자가 가장 두려운 암 환자들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혼자라는 사실이에요. 환자들에게 있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혼자 가야 한다는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이고 고통이죠. 설령 가족이 항상 옆에 있다 해도 보호자가 겪는 고통도 환자 못지않게 크기 때문에 저희 같은 호스피스가 보호자를 대신해 환자 곁에서 이야기도 나눠주고 기도도 해주며 그 시간에 보호자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곤 해요”
강정혜 씨는 말기암 환자 대부분이 함께 있어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는다고 말한다. 처음엔 낯선 사람의 등장에 거부하던 환자들도 호스피스들이 진심으로 다가가면 어느새 마음을 열게 돼 나중에는 호스피스 봉사자들이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한다고.
“환자들은 대부분 병과 우울증이 한꺼번에 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때 호스피스들이 그들이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를 들어주면 그들은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살아왔던 얘기들을 털어놓곤 하죠. 저희가 방문했을 때 환자들 마음이 편안해지고 우울증이 달아났다고 말할 때가 가장 보람 있어요. 저희가 한 거라곤 가서 함께 차 마시고 손잡고 기도하고 이야기를 들어준 것뿐인데 말이죠”
강정혜 씨를 비롯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은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수시로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하기도 한다. 때문에 말기암 환자들은 그동안 혼자라고 생각했던 우울함을 잊고 따뜻한 이웃들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는다.

생을 편안히 정리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지 않은 채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끝나는 경우가 많지요. 내 만족을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상대방의 입장만을 생각하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편안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이 호스피스가 해야 하는 일이에요. 환자를 대할 때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건 가식으로 대하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내가 함께 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고 누구나 한번은 세상을 등지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마지막을 편안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죠”
강정혜 씨는 누구에게나 죽음은 두려운 일이기때문에 만일 자신에게도 죽음이 닥친다면 지금처럼 평온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죽음들과 대면해오는 동안 남들보다는 어느 정도 객관성과 준비성을 갖게 되어 평온한 죽음을 맞을 수는 있을 것 같다며 미소 짓는다.
“호스피스 교육은 남녀노소 누구나 받아야 하는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인생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면 인생을 조금은 다르게 살게 되지 않을까요. 목사인 남편을 만나 부유하게 사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지만 후회해 본 적은 없어요. 호스피스 활동을 하기 전에는 봉사에 대해 막연히 알고만 있었지만 호스피스를 하고 나서는 봉사를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며 살아요”
누구나 잊고 살기 쉬운 죽음을 항상 가까이에서 접하며 내면이 한결 성숙해졌다는 강정혜 씨, 그녀가 바라보는 죽음이란 인생의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며 마지막과 시작이 혼재하는 그 지점에서 호스피스봉사자는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이승에서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인생의 마지막 선물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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