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색깔들이 눈에 들어왔다. 카레는 노랗고, 밥은 하얗고, 브로콜리는 녹색이다. 밥상위에서 노랑, 하양, 녹색은 서로 어우러진다. 나는 토마토, 당근, 호박, 시금치, 피망, 아스파라거스, 상추, 쑥갓, 깻잎 같은 녹황색 채소들을 즐겨 먹는다. 녹황색 채소는 당연히 녹황일 것이라고 예단하기 쉽지만 녹황색 채소는 색깔로 분류되는 게 아니라 채소에 함유된 베타카로틴의 양이 기준이다. 채소 100그램 안에 함유된 베타카로틴이 600마이크로그램을 넘어야만 녹황색 채소라고 한다. 나는 녹황색 채소를 씹으며 그 채소들의 맛을 음미할 뿐만 아니라 이 채소들이 가진 색깔들이 속삭이는 말에도 귀를 기울인다. 내가 색깔의 말들, 색깔의 비밀들에 관심을 가진 것은 색깔들이 감정과 생리에 관여하는 정도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다. 노랑은 나를 명랑함으로, 주황은 즐거움으로, 파랑은 편안한 안식으로 이끈다.

명란젓은 식욕을 돋우는 주황색이고, 눈은 우유처럼 희고 우유는 눈처럼 희다. 구두는 검정색이고, 단풍나무의 잎들은 붉다. 나는 검정색 구두를 신고 붉은 단풍잎들이 수북하게 깔린 길을 걷는다. 태양은 금색으로 빛나고 통영 바닷물은 푸르다. 해남 미황사의 동백꽃은 붉고 제주도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려 꽃 피는 수선화는 노랗다. 해가 질 무렵 강화도의 황혼은 주황빛이고, 일몰 뒤에 깔리는 어둠은 검정색이다. 우리 집 개는 누렇고, 가협마을 이장네 염소는 까맣다. 우리 산하에서 자취를 감춘 늑대의 몸통은 갈색 털이고, 지리산에 사는 반달곰은 검정색 털로 몸통이 덮여 있다. 늦가을 아침 조병화 시인의 생가인 안성 난실리 편운재 풀밭에 무심하게 떨어진 모과는 초록이 섞인 노란색이고, 한여름 밭에서 방금 따온 토마토는 관능적인 붉은색이다.

비온 뒤 하늘에 걸리는 무지개는 어떤가? 무지개는 잠시 이 세상이 피안(彼岸)인 듯 착시를 일으킨다. 무지개의 색깔들은 우리 안의 오욕칠정(五慾七情)과 조응한다. [天하늘 천 地땅 지 玄검을 현 黃누를 황]. 하늘과 땅 사이에 모든 사물들은 저마다 색깔을 갖고 있다. 이 색깔들은 저마다 다른 상징을 나타내며 저마다의 색깔로 노래한다. 연초록 싹들과 노란 개나리꽃, 녹색의 활력으로 노래하는 숲, 안성 금광호수의 아침에 피어오르는 하얀 물안개, 황량한 만경평야 겨울 빈들의 갈색들. 이 색깔은 바로 사물들의 숨은 자아들이다. 세상은 색깔들의 향연이고, 산다는 것은 곧 이 향연에 아무 조건 없이 참여한다는 뜻이다. 이 세계가 색깔들로 이루어진 만다라라면 나는 어느덧 그 만다라 속에 들어와 있다. 그리움은 그리움을 모르고 색깔들은 색깔들을 모른다. 우리가 먼저 보고 아는 척을 해야만 그리움은 가슴 속으로 들어와 그리움을 만들고, 색깔들은 색깔들의 즐거움으로서 인지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식별할 수 있는 색깔은 1000개 정도로 알려져 있다. 실로 엄청나다. 놀라지 마시라, 디지털 기술이 빛의 삼원색을 조절해서 구현할 수 있는 색깔은 1600만 개! 우리는 색깔들의 세계 속에서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 이토록 많은 색깔들은 저마다 만물조응하면서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금(琴)을 울린다. 색깔은 오감과 비벼지면서 감정과 심리에 영향을 미치고, 희로애락(喜怒哀樂)에 관여한다. 색깔들은 저마다의 시, 저마다의 신화, 저마다의 상징들을 갖고 그것을 보는 사람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게 색깔의 힘이고, 색깔의 에스프리이다. 사람마다 다른 마음과 욕구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 검정은 하염없는 슬픔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위압적인 권위의 상징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세상 모든 사물과 존재들은 저마다의 색깔을 갖고 있고, 사람은 그 색깔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만약 색깔들이 없다면 이 세상은 화사함을 잃고 칙칙했을 것이다. 살면서 만난 여러 색깔들은 내 감정생활을 더 화사하게 만들었으니, 내 삶은 내가 보고 새긴 색깔들이 마음에 남긴 무늬들과 사생활의 총합일 것이다.

아시다시피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왕자웨이 감독이 2000년에 내놓은 작품으로 장만옥과 량차오웨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이다. 때는 1962년, 장소는 상하이 출신들이 많은 홍콩의 한 아파트. 신문사 편집기자인 주모운 부부가 이사 오고, 일본인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진 씨 부부도 이사를 온다. 주모운(량차오웨이)과 진 씨의 아내 소려진(장만옥)은 각자의 짝이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알고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는다. ‘화양연화’는 인생의 아름다웠던 한 시절을 가리킨다. 아름다운 시절은 아름다운 색깔들이 아름다운 것으로 인지되었던 시절이다. 그 아름다운 것들은 빨리 사라진다. ‘화양연화’는 인생이 색깔들의 향연이라는 것을, 인생이 그토록 매혹적인 것도 그것이 빨리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 시절은 지났건만, 색깔들은 아련한 잔상으로 남아 가슴을 시리게 한다.

 

 

 

 

 


장석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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