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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평택의 전통예인-19
박성복 기자  |  sbbar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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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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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사신문·평택문화원 공동기획]

   
 

송창선은 호적 명인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호적 보유자로
호적은 물론 재담도 뛰어났다

 

김덕일, 남사당 진위패로 경복궁 중건 때 ‘오위장’ 벼슬 받아
송창선宋昌善, 평택 서정리 출신으로 호적잽이·덧뵈기로 명성
호적 2개를 한입에 물고 쌍 나팔을 자유자재로 연주한 예인

 

   
▲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호적 예능보유자 송창선




Ⅲ. 평택의 예인藝人
3. 농악

 

■ 김덕일과 심선옥沈善玉

김덕일은 조선후기 5대 남사당패의 하나였던 남사당男寺黨 진위패振威牌의 상쇠로 활동했던 꽹과리 명인이다.

김덕일은 조선 고종 4년(1867년) 흥선대원군이 마련한 경복궁 중건 기념 위안잔치에 남사당 진위패의 상쇠로 참여해 왕과 많은 군중 앞에서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판굿을 한바탕 펼쳐 왕으로부터 ‘오위장五衛將’이라는 정삼품의 높은 벼슬을 받은 인물이다. 이 때문에 남사당男寺黨 진위패振威牌는 전국적인 명성과 함께 명예를 얻게 됐다.

이날 남사당 진위패는 ‘진위군대도방권농지기’라는 농기 ‘도대방기都大房旗’와 3색 어깨띠를 하사받았는데 진위패를 이끈 장본인이 일제강점기 쇠락해져가는 남사당을 일으킨 유세기의 부친 유준홍이다.

심선옥沈善玉은 1900년대 초에 활동했던 진위패 남사당을 이어받아 꼭두쇠로 활동한 화성재인청 출신의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주요 활동지역은 평택과 화성 일원이었다. 전라도와 충청도 지방을 순회하기도 했으며, 심선옥패에 가담했던 인물들이 법고의 김문학, 양도일, 송순갑 등이다.

김문학金文學은 사물놀이 창시자로 잘 알려진 김덕수金德洙의 아버지로 법고, 열두발 상모, 사물 명인으로, 양도일과 꼬마국악쇼단을 만들어 한 시대를 날렸던 인물이다.

양도일梁道一은 1960년 민속극회 남사당에서 남사당패男社黨牌를 구성할 때 장구와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양도일은 1968년 2월 20일 평택 출신 송창선, 그리고 남운용에 이어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의 받는 소리와 장구부문의 예능보유자가 됐다.

송순갑宋淳甲은 20대 초반부터 27살 때까지 심선옥패에서 연희를 지속하다 1960년 민속극회 남사당에서 남사당패男社黨牌를 구성할 때 법고와 덧뵈기로 활동했으며, 이후 사물놀이 창시자인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등의 제자를 양성했다. 송순갑은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호 웃다리농악의 보유자로 지정받았다.

 

3) 남사당男寺黨 예능보유자

   
▲ 송창선은
민속음악계에서
송복산으로 불렸다

■ 송창선宋昌善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호적의 명인 송창선은 1911년 평택시 서정동에서 태어났으며, 예명은 송복산宋福山으로 민속음악계에서는 이름을 송복산으로 부른다. 어려서부터 서정리 마을에서 농악을 익혔고, 30세 때인 1940년에는 호적의 명인 방태진房泰珍에게 배웠다. 송창선은 이미 호적 연주를 하고 있었지만 그 시기 방태진을 만나 호적 재학습을 했다고 볼 수 있다. 1940년대 중반부터 호적수로 남사당패를 수행했으며, 안성 복만이패 행수 김복만의 제자인 양도일梁道一에게 남사당 덧뵈기를 배워 덧뵈기도 매우 잘했다.

송창선은 평택시 서정동에서 태어났으나, 이후 성장 과정이나 학습 내력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결혼할 당시 평택과 오산 일대에서 호적을 가장 잘 부는 이로 소문이 나있었다고 한다. 송복산은 해방 직후 남운용 등이 옛 ‘원육덕패’를 재규합 할 때에 참여했다.

남사당놀이는 우리 고대민족사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집단으로 유랑예인을 일컫는데, 이 남사당놀이가 1900년 이후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됐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멀어지다가 해방이후 남사당 뜬쇠 송창선을 비롯해 송순갑, 양도일, 남운용이 남사당 재건공연을 시작했다.

1960년 민속극회남사당民俗劇會男社黨에서 남사당패男社黨牌를 재구성했을 때 호적잽이였던 그는 꽹과리 최성구·남형우, 장구 최은창·양도일, 법고 김문학·송순갑·지운하·홍흥식, 징 황점석, 북 지문수·박종휘, 호적 정일파와 함께 동참했다. 송창선은 주 특기인 호적 이외에도 남형우, 양도일, 최성구, 이수영, 박계순, 박용태, 최은창, 지수문과 함께 덜미를 맡았다.

문화재관리국은 1964년 박헌봉과 이두현에게 ‘꼭두각시놀음’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고, 꼭두각시놀이를 중심으로 국가무형문화재를 지정했다. 이때가 우리나라에 무형문화재 제도가 처음으로 시행된 시기로 당시 이두현李杜鉉은 문화재관리국의 조사위촉에 의해 1964년 ‘꼭두각시놀이’, ‘오광대놀이’, ‘양주별산대놀이를 정리했다. 꼭두각시놀이를 조사할 때는 호적잽이었던 송창선의 구술을 채록해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기고,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송창선은 1964년 12월 7일 덜미라 불리는 ‘꼭두각시놀음’ 종목이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될 당시 가장 앞서 남운용南雲龍과 함께 예능보유자가 됐다. 꼭두각시놀음 가운데에서도 송창선의 지정 종목은 호적이었다.

   
▲ 호적을 불고 있는 남사당놀이 호적 보유자 송창선

‘꼭두각시놀음’은 탈춤과 함께 우리 고전극의 한 종류이면서 색다른 것은 주인공 박첨지의 일대기적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박첨지 일가의 파탄과 구원이라는 줄거리를 일관적으로 지니고 있는 ‘꼭두각시놀음’은 삶의 덧없음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격조 높은 인형극이다. 반주악기는 풍물에 쓰이는 꽹과리, 북, 징, 장구, 호적이고, 장단은 염불, 타령, 굿거리 등이며, 주로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인형의 양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상반신을 흔드는 춤을 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꼭두각시놀음’은 남사당놀이 여섯 마당의 한 종목이었기 때문에 1988년 다섯 마당이 포함된 ‘남사당놀이’로 문화재 명칭을 광의적廣義的으로 변경했다. 

남사당패는 꼭두쇠를 정점으로 공연을 기획하는 화주, 놀이를 관장하는 뜬쇠, 연희자인 가열, 새내기인 삐리, 나이든 저승패와 등짐꾼 등으로 이루어지지만, 남사당놀이는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등 여섯 마당으로 구성된다.

송창선은 1964년 12월 7일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이후 공연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1968년 2월 15일 서울YMCA 강당에서 개최한 민속가면극 광대탈 발표회는 지난 30여 년간 자취를 감췄던 광대탈을 발굴한 공연으로 평택과 안성지역의 굿중패 사이에서 연희됐던 산대극계山臺劇系의 하나인 광대탈을 소재로 한 것이다. 광대탈은 서민들이 양반에 대한 반항과 파계승의 풍자를 보이는 대중오락극으로 다른 탈춤에 비해 연극적 요소가 짙고 당시 사회에서 버림받은 서민층에 뿌리박은 것이 특징이다.

1968년 6월 19일에는 남사당의 여섯 마당 가운데 첫 번째 종목인 풍물을 1920년대 이후 자취를 감춘 지 40여년 만에 재현했다. 이날 경복궁 뒤뜰에서 개최된 재현 공연은 민족극회 남사당을 만든 심우성의 주도로 평택 출신 송창선과 최은창을 비롯해 최성구, 남운용, 송순갑, 정호동, 홍홍식, 지운화, 남기환, 남기돌, 지수문, 김재섭, 양도일, 김문학, 황점석, 곽복열, 임광식, 박계순, 박용태 등 당대 최고의 연희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 남사당놀이의 송창선, 양도일, 남형우, 박계순, 조송자(사진 오른쪽부터, 1960년대)

1968년 12월 14일에는 무형문화재 발표공연이 드라마센터에서 개최됐다. 우리 전통민속의 재현과 보급을 위해 진행한 이 공연에는 꼭두각시놀음과 함께 양주별산대놀이와 북청사자놀음도 함께 진행했는데 꼭두각시놀음은 송창선과 남운용, 양도일, 박계순 등 9명이 출연했다.

1969년 7월 23일 카페테아트르에서 진행한 꼭두각시놀이 공연은 1시간 45분 동안 진행됐는데 이 공연의 주요 배역은 대잽이 남용운, 신발이 양도일, 대잽이보 송창선, 박계순, 최성구 등이었다.

1970년 6월 16일 민속극회 남사당 주최로 한국일보 소극장에서 열린 꼭두각시놀음 공연에는 예능보유자 자격으로 참여했다. 문화재관리국 후원으로 열린 이 공연은 무형문화재 제3호 꼭두각시놀음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송찬선과 남형우, 양도일 등 10여명이 각각 대잽이, 산받이, 잽이 등으로 출연했는데 송창선은 이 공연에서 호적을 연주했다.

1978년 10월 12일부터 18일까지 일주일간은 공간사랑에서 꼭두각시놀음 공연을 진행했다. 평일에는 하루 한 차례, 주말에는 하루 두 차례 진행된 이 공연은 사단법인 민속극회 남사당 주최로 평택 출신 송창선, 최은창을 비롯해 박용태, 남기환, 강천희, 양도일, 박계순, 신춘성, 김재원, 배순애 등이 출연했다.

당시 남사당 예능보유자로 활동했던 송창선은 고향인 평택에 기여하기 위해 1980년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경기농악 호적수로 참가해 개인연기상을 받았다. 이후 평택농악은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로 등재됐다.

1981년에는 정부의 요청으로 ‘국풍81’ 행사에 참여한다. 한국민속극회가 진행한 남사당놀이 공연은 남사당 단원 30여명이 출연해 농악과 땅재주, 탈놀음, 꼭두각시놀음 등을 벌였는데 호적 예능보유자 송창선을 비롯해 풍물과 버나, 덜미의 김재원, 풍물과 덜미의 박계순 등 명인들이 출연해 공연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 40여년 만에 재현한 남사당 관련 기사(경향신문, 1968년 6월 19일 보도)

송창선은 경기 능계가락을 비롯해 남도 시나위가락 등 각 지방의 호적가락에 능했으며, 제자로는 김재원金在元과 7살에 남사당에 입단해 송창선에게 호적을 배운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 같은 사물놀이패의 김용배 등이 있다. 이들은 송창선에게 농악가락에 대한 예능적 지혜를 터득했다.

또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 전수교육조교 남기문도 송창선에게 꼭두각시놀이를 전수받았다. 남기문은 송창선과 같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남사당의 대가 남운용과 또 다른 보유자 박계순의 차남으로 7살에 남사당에 입단해 송창선에게 남사당 전반에 대해 익혀 그에게 송창선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2000년에 발매한 <송복산 태평소 독주> CD에는 시나위, 굿거리, 덩덕궁이, 타령, 긴가락, 창부타령, 노래가락, 양산도, 태평가, 종로네거리, 풍물 등 송창선이 심혈을 기울여 직접 연주한 곡들이 수록돼 있다. 송창선은 1974년 심우성沈雨晟이 펴낸 《남사당패연구男社黨牌硏究》를 감수했으며, 이 책은 현재까지 남사당 연구와 관련해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

송창선은 체구도 매우 작은데 사람이 입으로 말하는 것처럼 호적을 잘 불었다. 얼마나 재능이 뛰어났으면 호적 2개를 한입에 물고 쌍 나팔을 자유자재로 불었을 정도로 호적으로는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당시 송창선처럼 호적을 잘 부는 사람을 구경하기 힘들었으며, 재담도 뛰어나 타인을 요절복통하게 만드는 재주도 가졌다. 송창선은 1986년 5월 22일 작고했다.

남사당 예능보유자였던 송창선의 형인 송대선도 걸립패에 참여하는 등 형제가 모두 농악 명인의 반열에 올랐던 인물이다.

 

 
▲ 글·박성복 사장
   편집·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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