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항의 올바른 발전 도울 것”


3개 시·군 통합 앞장
평택항 발전이 최우선

 

 

 

“평택항을 지속해서 개발해 평택시를 세계적인 항구도시로 만들어야 합니다. 평택항은 평택시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자 도시에서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이죠”

수십 년간 평택에서 정치·시민사회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온 김찬규 평택항수호범시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는 팔순八旬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험난한 어린 시절

평택시 안중읍 학현리에서 태어난 김찬규(79) 대표는 그리 부유하지 않은 농가의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위로는 형들에게, 아래로는 동생들에게 치이며 자란 그는 어린 시절 굉장한 말썽꾸러기였다고 한다.

때로는 대담한 일로 동네 어른들을 놀라게도 했다.

“제가 10살 때 6.25 한국전쟁이 일어났는데 인민군이 저희 집 소를 강제로 끌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부당하다고 여겨 따지고 묻자 인민군은 어린 제 얼굴에 총구를 겨눴죠. 어쩔 수 없이 소를 내줬는데 너무 약이 오른 나머지 친구와 함께 몰래 쫓아가 소를 되찾아 왔습니다”

어린 소년이었던 김찬규 대표의 패기는 인민군의 총구도 당해내지 못 했나 보다. 그는 또 학업에 대한 욕심도 남달랐다고 한다.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전교 2등으로 당당히 합격했는데 부모님께서는 학교에 보낼 수 없다며 집에서 농사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먹고 살기 빠듯했기에 학비를 감당하실 수 없었던 것이죠. 뿔이 날 대로 나 단식투쟁을 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형이 학교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제 학비를 부담하기로 약속해 중학교에 다닐 수 있었죠”

 

평택에서의 정당 활동

서울에서 대학교에 다니던 김찬규 대표는 1966년 친구들과 함께 고향 땅 평택으로 내려와 농촌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평택 서부지역에서 25세에서 27세 사이 청년 428명을 모아 ‘청록회’라는 단체를 결성해 농촌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민주공화당 이윤용 국회의원의 선거운동을 도와 정당에 발을 들이게 됐죠”

그는 이윤용 국회의원과의 인연으로 민주공화당 평택군지구당에서 본격적인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1971년 국회의원 선거 당시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수만 명의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회를 맡아 평택역 광장 앞에서 선거 유세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김찬규 대표는 1980년 말까지 8년간 민주공화당 평택군지구당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정당 활동을 이어나갔다.

“1980년대 말에는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신민주공화당의 창당을 돕기도 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돌아온 김종필 씨에게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이제야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타났냐며 따지고 묻기도 했었죠. 그만큼 옳다고 생각할 때에는 거침없이 발언하는 성격이었습니다”

 

지역사회를 위한 헌신

김찬규 대표는 지난 1994년 평택군과 평택시, 송탄시 3개 시·군 통합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당시 ‘3개시·군통합평택시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에 선임돼 본격적으로 시민사회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지역의 균형 발전을 위해 3개 시·군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력 끝에 시민 투표를 통해 3개 시·군 통합이 이뤄졌죠. 이를 계기로 평택시가 많은 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통합이 이뤄지자 그는 3개시·군통합평택시추진위원회 해단과 동시에 평택시발전협의회의 발족을 제안했다.

“3개 시·군 통합을 이뤄냄과 동시에 평택의 올바른 발전을 도모하고자 평택시발전협의회를 만들어 함께 활동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105명의 회원과 함께 1996년에 ‘평택시발전협의회’를 구성했고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죠”

김찬규 회장은 무엇보다 평택항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 온 힘을 기울여 왔다.

“1997년에는 평택항의 명칭을 아산항으로 변경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해양수산부에 공식 항의를 하는 등 평택시민과 함께 평택항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또 인천항운노조가 좌지우지하던 평택항운노조를 독립 노조로 만들기 위해 3년간 투쟁 끝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당진시와의 평택항 귀속 분쟁이 일어난 뒤에는 평택항수호범시민운동본부를 조직해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죠”

그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지자체와 협력해 평택항 귀속 분쟁에서 승소할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분쟁에서 승소할 경우 평택항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단체를 만들고 싶다는 김찬규 회장은 전국 항만 지역과 연대해 평택항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규모의 세수를 지방으로 이양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을 볼 때 향후 평택항이 발전하는 만큼 지역을 향한 그의 헌신도 더욱더 깊게 기억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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