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프랑스 소설가 폴 부르제가 했던 이 말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어떤 계시처럼 느껴집니다. 요즘 사람들은 옛날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더 여유 있는 삶을 즐기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이면에는 예전보다 더 외롭고 공허하고 고독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루를 돌아보면서 생각할 시간은 사라진지 오래고,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여긴 어디? 나는 누구?”하는 우스갯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옵니다.

주변에 우리를 현혹하는 것들은 왜 그리 많은지, 조금만 눈을 돌리면 먹을 것, 입을 것, 즐길 것 등이 즐비하고 텔레비전을 켜면 기다렸다는 듯이 수많은 광고들이 쏟아져 우리를 유혹합니다. 채널을 돌릴 때마다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홈쇼핑 쇼호스트의 이야기를 듣다 나도 모르게 주문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도 이제 일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광고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내게 왜 필요한지, 다른 것과 비교할 틈을 주지 않고 오로지 그것을 구입할 것인지 말 것인지, 좋은지 나쁜지 만을 결정하라고 자꾸만 재촉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갈수록 더 화려하게 변신하고 그것도 모자라 요즘은 사람의 마음을 순식간에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기도 합니다. 학문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심리학이 광고에 더해지는 셈이지요.

학문에 뿌리를 둔 보이는 것의 영역은 갈수록 더 큰 힘을 갖게 되고 그에 비해 우리는 점점 더 세상의 구경꾼으로 전락합니다. 의지가 부족하다면 계속 끌려 다니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요즘 세대의 보이지 않는 단면입니다. 사람들은 미처 “왜?”라는 질문을 던질 새도 없이 그들이 이끄는 대로 판단하고 결정해 버리기 일쑤입니다.

세상이 변화하면서 우리가 잃어가는 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바로 ‘생각하는 힘’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게 왜 필요하지?” 혹은 “그것이 왜 내게 중요한데?” 하며 되묻는 힘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힘이 사라져가니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생각하는 힘을 갖기는 더 어렵습니다. ‘사랑’ ‘행복’ ‘정의’ ‘도덕’ ‘평화’ 등등 보다 나은 삶의 지향점들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영역에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저 단순히 즐기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거나 나만 풍요롭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현상들이 생기는 것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즉흥적인 사랑이 많아지는 것이나 인간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져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지속되는 것도 생각하는 힘의 부재에서 시작합니다. 상식이 사라진 행동을 하거나 혹은 공공의 가치가 훼손되어도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알지 못하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역시 우리들의 생각의 깊이가 사라지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삶을 위해서는 먼저 성찰하는 힘,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것을 하던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 인간에게 있어 그것이 왜 필요한지 깊이 생각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 대로 살아가는 삶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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