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원평동 앞장서서 지켜요”

봉사의 프로들에게 늘 배우는 마음으로 살아
밑바닥까지 내려가도 다시 일어설 힘은 있어

 
지역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며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다. 특별한 명예나 어떤 대가를 바라서가 아닌 그저 나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사람들이 있고 내가 몸을 움직여 할 수 있는 일이 있기에 그들은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쪼개 지역을 위한 일에 앞장서곤 한다.

밑바닥에서부터 이뤄낸 현재
“횟집을 시작한 건 6년 정도 되었네요. 횟집을 운영하는 동안 쌍용차 구조조정 문제 때문에 경기가 많이 가라앉기도 했고 가게도 타격을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아직 밥 먹고 살 정도는 되니까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죠”
대운수산과 동부수산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김광일(48) 대표는 생업인 횟집 외에도 로타리클럽이나 피플투피플에서의 활동을 비롯해 원평동주민자치위원회, 원평동바르게살기위원회, 원평동체육회, 원평동상가번영회, 원평동 복지위원 등의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1997년에는 가정이 경제적으로 밑바닥까지 내려간 일이 있었어요. 횟집을 시작하기 전이었는데 친구를 도와주려 하다가 집도 날아가고 빌려준 돈도 못 받고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시기가 있었죠.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가 안 좋은 일을 벌이다 그렇게 됐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속내를 일일이 다 밝힐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냥 열심히 일만 했죠. 그러다보니 조금 숨통이 트이는 날도 오더라구요”
김광일 대표는 남을 도와주려다 지게 된 빚을 5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하며 어느 정도는 갚았다고 말한다. 사람이 어려운 시절에 부딪히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쓰게 되고 힘든 표정을 짓게 되는데 그럴 때일수록 그는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람들과 어울리곤 했다고.

봉사하며 만난 또 다른 세상
“처음엔 단체를 이끄는 분들을 따라다니며 시키는 일만 하는 봉사를 시작했죠. 바르게살기 김명옥 위원장님은 봉사의 프로였는데 전 그분을 따라다니며 봉사에 대해 참 많이 배웠어요. 정말 봉사의 프로답게 어떤 일이든 척척 해내곤 했었죠. 저도 처음엔 어색해서 시키는 일만 했지만 지금은 스스로 찾아서 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어요. 어떤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봉사만 하는 날도 있어서 생업을 이어가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그래도 많이 이해해주기 때문에 최대한 생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지역을 위한 봉사에 참여하려고 해요”
김광일 대표는 자신의 아이들은 아빠가 봉사하며 사는 걸 잘 모른다며 쑥스러운 듯 웃는다. 봉사가 자랑할 만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데다가 이젠 아이들이 커서 대면할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는 게 그의 주장이지만 그에게 있어 봉사는 이미 일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원평동을 위한 각종 단체들의 중요 직책들을 맡아 활동하며 그가 느낀 것은 내 가까운 주변에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이 참 많구나 하는 것이었다.
“무연고 노인들의 장례를 치러준 일이 몇 번 있어요. 그때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죠. 내 가족도 아닌데 장례를 치러준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좋은 일 했구나 하는 생각은 오래 가슴에 남아 있었죠. 주변에 그런 분들이 꽤 많아요. 가족이 있어도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 장례를 치르고 나면 몰래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서 화장을 하고 나면 15년에서 20년 정도는 납골당에 모셔두는데 이따금 가보면 꽃이 놓여있는 경우가 있곤 해요. 연고자가 다녀간 흔적이죠”
김광일 대표는 자식이 있어도 도움을 못 받는 경우 자신이 가입한 단체에서 조사 후 도움을 주는 일이 많아 뿌듯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봉사에 있어서는 자기 몸 안 돌보고 하는 분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은 아직 감히 명함도 못 내미는 정도의 부끄러운 일이라며 한사코 손 사레를 친다.

생업도 원평동지킴이도 ‘열심’
“생업을 이어가야 하는 가장으로서는 때로 회비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요. 그래도 사람들은 제가 횟집도 두 개나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울 거라는 생각을 안 하고 각종 행사가 있으면 도와달라고 하는데 어떨 때는 정말 어려워도 내색 못할 때가 많죠. 제가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주변에서 각종 모임에 추천을 해주셨는데 직책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 덕분에 봉사의 참맛도 알게 되고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으니 후회는 안 해요. 물론 한 집안의 가장이니까 생업이 가장 우선이긴 하죠”
활동이 많아진 까닭에 가끔 아내의 눈치를 보기는 하지만 주변에 문 닫는 가게들이 자주 눈에 띄어도 그는 더 열심히 지역을 위해 봉사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투자에 힘쓰고 자신의 마음자세를 예전보다 더 가다듬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그가 오랫동안 이어온 삶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몇 번의 크고 작은 고비가 있긴 했는데 그때마다 생각하는 건 신이 바닥까지 끌어내리긴 해도 결코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할 정도까지 빼앗진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자신을 가다듬고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는 반드시 오더라구요”
자신이 많이 돌봐주지 않았어도 바르게 자라는 아이들에게 가장 고맙다는 김광일 대표, 비록 어려운 시절을 겪어내기는 했지만 지금 이렇게 봉사하며 살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그는 생업에 열심히 임하는 자랑스런 가장이자 지역의 든든한 지킴이로 우뚝 서서 원평동의 내일을 희망으로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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