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과 함께 한 50평생, 다 아내 덕이죠”

한석봉·김구 선생 글씨·진품 ‘4마패’도 소장
소장품마다 사연과 눈물이 담겨 ‘애정도 커’

 
어디에나 수집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으는 수집품들은 대부분 쉽게 얻을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평생을 바쳐 열정과 헌신으로 한 작품 한 작품 모아온 것들은 저마다 애틋한 사연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국서도 손꼽는 귀한 작품들
“제가 갖고 있는 작품들은 주로 글씨나 그림이 많습니다. 전국에서도 몇 개 없는 미공개 작품들도 많은데 그런 것들을 구입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지요. 어디에 작품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몇날 며칠씩 찾아가 애걸하기도 하고 때로는 제 작품과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작품이 아파트 한 채 값이 되는 것도 있고 지금은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작품도 있지요”
신찬호(74) 어르신은 처음에는 그저 좋아서 취미로 수집을 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점차 작품성을 따지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그의 수집품 중 귀한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에 대해 귀동냥을 들은 전국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알음알음 그를 찾아오는 일도 다반사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진품 마패가 단 3개뿐입니다. 말 1개짜리와 말 2개짜리는 서울 분이 갖고 계시고 말 4개짜리 마패는 바로 제가 갖고 있지요. 마패는 제가 수집한 작품 중에서도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더 이상 구할 수가 없으니까요”
구입할 당시 아파트 1채 값을 주고 산 마패였지만 쇳덩어리에 불과한 마패를 본 아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걸 엿장수에게 주면 엿을 몇 가락이나 주겠느냐고 물었다며 어르신은 지금도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말한다. 어르신이 소장한 작품들은 실로 귀하게 대접받을 만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한석봉 선생의 글씨,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기념하며 김구 선생이 쓴 전국에서 단 2점뿐인 글씨, 추사 김정희 선생의 미공개 작품, 임금의 교지와 진사시험에 제출한 답안지,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에 거주할 당시 쓴 ‘행동하는 양심’, 전직 대통령들의 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는 글씨와 그림, 민족대표 33인의 글씨 등 진귀한 작품들이 많아 TV쇼 진품명품을 진행하는 분들도 그의 작품들을 보기 위해 자주 들르곤 한다고.

아내의 헌신으로 작품 수집해
“아내의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 저렇게 귀한 작품들을 모으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그리 부자도 아니고 물려받은 유산도 없는 사람인데 욕심나는 작품들이 있으면 꼭 갖고 싶어 밤잠을 설치곤 했거든요. 어떨 때는 갖고 싶은 물건을 구입할 돈이 없어 고민하고 있으면 아내가 옆집에서 돈을 빌려다 갖다 주기도 했지요”
신찬호 어르신은 그림과 글씨 외에도 다양한 옛 유물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수집전문가로서 한자로 적힌 작품들을 읽어내기 위해 독학으로 공부해 한자 급수시험 2급 자격증도 따냈다. 비록 취미로 시작한 일이긴 하지만 작품들이 모아지기 시작하면서 이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된 까닭이다.
“전 작품을 수집할 때 마구잡이로 수집하진 않습니다. 글씨는 서력, 그림은 화력을 면밀히 살펴보고 작가의 국가관이나 애국심까지도 살펴보고 작품을 구입합니다. 이완용은 당대 최고의 명필이지만 제게 있는 작품은 한 작품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줘 버렸습니다. 글씨만 잘 쓴다고 소장가치가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제 스스로 작품과 작가에게 매력을 느껴야 소장하고 싶어지는 법이거든요”
신찬호 어르신은 작품수집에 대한 남다른 소신이 있다. 유물들을 수집할 때는 자손들이 추후에 모르고 버렸다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자신도 돈을 주고 구입했음에도 자손들의 정성을 보고 되돌려주는 일도 많았다고.

평택 박물관에 기증하고 싶어
“작품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각 지자체에서 박물관에 기증해 달라며 찾아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주도에서도 제안이 왔고 수원에서도 요청이 왔었지요. 그러나 전 만일 작품들을 공개하게 된다면 제가 살고 있는 평택에서 먼저 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태 그분들의 요청을 미뤄왔었지요”
신찬호 어르신은 우리나라 각 지역의 박물관에서 오는 요청에 대해 감사하면서도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우선적으로 공개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지역에 많이 있음에도 누가 선뜻 불을 지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아쉬운 일이라고 털어놓는다.
“평택에는 아직 이렇다 할 박물관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진품 마패나 미공개 작품들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것이라 그런 것들이 지역에 전시된다면 의미가 있을 텐데 말이지요. 평택에 박물관이 생긴다면 무엇보다 지역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큽니다”
그가 모은 작품들은 하나같이 역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작품 하나하나 마다 수집한 이의 눈물과 사연들을 안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만일 평택에 시민들을 위한 박물관이 생겨 그의 작품들이 지역에 환원된다면 우리는 귀한 역사적 사료들과 더불어 한 시민의 각고의 노력이 깃든 생활사까지 덤으로 얻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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