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풍요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요”

1990년부터 송탄에서 작품 활동, 2020년 1월 영면
1991년 국제아동미술전 창립, 개인이 27년간 이어와
평택예총장으로 치러진 장례식, 문화예술인 큰 슬픔

 

“나는 송탄지역에서 아파트 벽화를 그리면서 살아간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새순이 돋듯 나무들이 어느새 새파랗게 변해 그늘을 주고, 가을이 되면 그 고운 빛깔로 다음을 기약하고 떨어져 내리는 낙엽을 쓸어낸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에게 귀찮은 존재는 나무가 아니고 그 아름다움과 그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가지를 싹둑 싹둑 잘라내는 인간들이 아닌가 생각했다.”

- 평택~용인 국도 45호선의 플라타너스 나무들을 생각하며 조순조 화백이 <평택시사신문>에 보내 온 ‘시사기고’ 중에서 -

▲ 제16회 국제아동미술전 출품작 앞에 선 생전의 조순조 화백(2006년)

1990년대 초부터 송탄의 문화예술을 꽃피웠던 큰 별이 떨어졌다. 자신의 작품이 조명 받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 세상의 배경이 되고자 했던 예술가, 어린이를 사랑하고, 그늘이 없는 단순한 컷을 사랑하고, 모서리가 없는 그림을 즐겨 그린 조순조 화백이 1월 10일경 자택에서 78세를 일기로 별세해 사람들을 슬픔에 빠지게 했다.

조순조 화백은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1970년대에 송탄에 자리를 잡고 화가가 되었다.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다가 1990년대 초 송탄예총이 생기면서 사무국장으로 재직하며 이때 처음 국제아동미술전을 시작해 27년 동안 꾸준히 맥을 이어왔다.

한국미술협회 송탄지부에서 활동했으며 1995년 3개 시·군 통합 이후에는 평택미술협회와 송탄미술인회에서 활동했다. 목판화 외에 시를 쓰기도 했던 조순조 화백은 50여 편의 시를 지역 문예지에 발표하기도 했으며 콩트나 연극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예술은 미래를 보고도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풍요를 위해서도 하고 그런 거지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동안은 참 보람 있었어요. 어렵게 사는 나라의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어린아이들끼리의 공감대도 마련해 줄 수 있었으니까요”

 

▲ 제28회 국제아동미술전 개막식

 

오랫동안 송탄지역에서 벽화를 그려왔으며 송탄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서 작은 화랑을 운영하며 삶을 이어온 조순조 화백은 지난 2012년 <평택시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만들어 오래 이끌어 왔던 국제아동미술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학생시절부터 밥 먹을 때도 클래식을 틀어놓을 정도로 클래식을 사랑했고,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서울까지 올라가 오페라를 감상하다 차가 끊겨 제일 싼 여인숙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는 조순조 화백은 송탄 라이프아파트 벽면에는 국제아동미술전 출품작들을, 건영아파트 벽면에는 색색의 사계를, 지산초록도서관 긴 벽면을 따라서는 책을 이고, 지고, 메고 도서관으로 걸어가는 재미있는 표정의 거북이들을 그려 넣었다.

▲ 제29회 국제아동미술전 개막식

“내가 그리는 컷은 그늘이 없어요. 단순하지. 누구든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인데 컷을 너무 잘 그리면 소설이나 시가 아무리 좋아도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죽어버려. 컷은 절대 잘 그리면 안 되지”

“희망근로 하는 사람들하고 같이 벽에 그림을 그려 넣었지요. 다들 나처럼 잘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통하는 것도 많았어요. 내 그림에는 모서리가 없지요. 모서리가 생기는 곳들은 전부 둥글게 처리했거든요. 부드러운 느낌이 들도록 말이에요”

조순조 화백은 국제아동미술전 개막식 테이프커팅을 할 때도 어린이들을 맨 앞줄에 세웠고 아이들이 가위로 테이프를 자르기 어려워하자 종이로 테이프를 만들어 쉽게 찢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어린이를 먼저 생각했다. 2012년에는 국제아동미술전에 참여하는 어린이들에게 크레파스와 색연필을 선물하기 위해 자신의 작품을 모아 삽화그림 전시회를 열고 수익금을 모두 쏟아 부었다. 2018년부터는 더 이상 개인적으로 행사추진이 어려워지자 평택시국제교류재단이 맡아 운영했으나 국제아동미술전에 대한 그의 애정은 식을 줄 몰랐다.

“열여덟에 송탄으로 올라와 육군 상사였던 전도사한테 클래식을 배운 뒤로는 음악에 빠져 부대 안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반들을 모으기도 했지요. 밥 먹을 때도 음악을 틀어놓고 먹어서 어머니가 그림 때려치우고 음악을 하라고 소리 지르실 정도였어요”

▲ 고 조순조 화백

조순조 화백의 생전 음성이 귓가에 쟁쟁하다. 그의 화랑에서 들리던 클래식 음악, 그리고 뜬금없이 기자에게 피가로의 결혼 중 ‘저녁바람은 부드럽게’를 들어봤느냐고 묻던 조순조 화백의 순수하고 고독한 영혼도 이제는 평안히 영면에 들었고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만 머물게 됐다.

평택 미술계의 큰 별인 조순조 화백이 며칠이 지나 시신을 발견했을 만큼 외롭게 살다가 영면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지역의 많은 문화예술인과 지인들이 안타까워하며 그의 장례를 십시일반 돕겠다고 나섰다. 장례식은 1월 17일 오후 7시 독곡동 송탄 제일장례식장에서 평택예총장으로 치러졌으며, 그를 기억하는 많은 문화예술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한편, 조순조 화백은 경기도세계관광박람회 초청 전시를 비롯해 수십 회의 개인전과 국제전에 참가했던 평택의 대표적 예술가다. 1994년 경기도지사 문화예술부문 표창 등 10여회 이상의 표창과 국내전과 국제전에서 12회 이상 입상한 경력을 갖고 있는 조순조 화백의 판화작품은 주한 인도·불가리아 대사관과 러시아 하바로브스크 음악대학 등에서도 소장하고 있을 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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