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그리운 시간, 생각나는 사람들

지나간 역사에서 사람들에게 재미와 흥미를 주는 것은 궁궐 안에서 학문을 갈고 닦은 사관들이 쓴 ‘실록實錄’에 기록되어져 있는 정사正史가 아니라 역사의 뒷전에서 일어난 이야기이거나 여인네들의 치마폭에 감추어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 즉 야사野史입니다.
그러니까 조선 명종 임금 때 조선왕조실록에 단 한 줄 기록되어져 있던 천마산을 호랑이처럼 넘나들던 ‘임꺽정’이란 도둑놈 이야기가 충청북도 괴산 땅에서 태어난 작가 ‘홍명희’에 의해 대한민국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이 된 ‘임꺽정’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야기꾼들의 이야기를 한군데 모아서 만든 야사의 대표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흔히 귓속말로 소곤소곤 주고받으며 골방에서 골방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이란 남들에게는 내보이고 싶지 않은 속살 같은 것들이어서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더하게 하고 또 여기저기 삽시간에 전해지는 전파력도 강력했던 것입니다.
한동안 군사문화 후유증으로 세간에서 널리 쓰이던 유행어로 ‘간첩’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1970~80년대 평택 시내를 오가는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우체국 건너편 작은 구멍가게 주인 ‘전문희全文姬’를 모르면 ‘간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구멍가게 주인은 한 때 사교계를 주름잡던 사회 저명인사라든지 아니면 벌쭉한 문벌에서 태어나 외국유학까지 다녀온 절세미인이라던지 아니면 세칭 ‘쭉쭉 빵빵’한 ‘글래머’도 아닌 그저 늘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평범한 ‘아줌마’였습니다.
그런데 그 구멍가게는 듣기에도 생소하고 입에 올리기에도 눈치가 보이는 ‘네부랄’이라는 애칭으로 사람들에게 불리어졌는데 ‘네부랄’ 이라니…??? 이 무슨 해괴망측해서 차마 남에게 전하기도 남세스러운 호칭이란 말인가 하고 생각들을 하시겠지만 그 ‘네부랄’이란 바로 한 시대를 풍미한 미제 화장품 상표인 ‘레블론’이 사람들의 입과 입을 타고 번지면서 어미語尾 변화를 일으켜 탄생된 이름이고 보면 그리 상스럽게만 들리지는 않을 일입니다.
그러니까 ‘트럭’이 ‘도라꾸’로 불리어지고 미국 자동차 ‘지엠씨GMC’를 ‘제무시’로 부르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지요. 그러니까 ‘네부랄’은 곧 ‘레블론’ 아줌마였던 셈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줌마가 미제물건 장사를 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상스러우리만치 신기하게도 엎어지면 무르팍이 닿을 가까운 곳에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크기의 송탄과 안정리 미군부대가 있음에도 평택은 ‘기지촌’ 같은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도시정서로 해서 평택 어디엘 가도 미군부대 PX에서 흘러나온 미제물건을 쉽게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알음알음 동네 ‘아줌마’들 입을 통해서 어디에 가면 미제물건이 있다하더라는 정보를 얻어서 화장품 나부랭이나 아니면 ‘짐빔’, ‘씨바스 리갈’ 같은 싸구려들이나 구입할 수 있었지요. 그러니 ‘네부랄’이라고 문 열고 들어가면 미제물건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바로 코앞이 평택경찰서이고 보면 아무리 대인관계가 좋아 평택 마당발로 통하는 ‘네부랄’ 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법을 대놓고 눈감아 줄 관공서는 어디에도 없으니 내놓고 장사를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네부랄’에서는 애당초 부당한 거래가 일어날 소지를 만들지를 않았습니다. 명색은 구멍가게였지만 그러기에는 별로 내세울만한 물건도 없었고 그렇다고 술집이라고 부르기에는 술을 전문으로 팔아서 사람들이 모여앉아 질탕하니 술을 먹고 고성방가를 일삼으며 시간을 보내는 장소 또한 아니었으니 참 애매모호한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구멍가게 안은 고작 의자 몇 개가 놓여있는 게딱지만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시절이 그냥 시내에 나가 술을 먹지 않고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던 10월 유신 그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삼청교육대’로 끌려간 줄 번연히 알면서도 어디에 가서 호소를 하거나 구명운동을 할 수 조차 없었던 공포의 시대를 몸으로 넘기며 어디든 물려가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들이키고는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하고, 다시 해도 응어리가 풀리지 않아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엔 섭섭해서 잠시 들어가 앉아서는 세상이야기를 주고받던 곳 ‘네부랄’ 술집이라면 술에 물을 타던지 아니면 가짜 양주 그도 아니면 안주에 바가지를 씌워야 품값이라도 나오고 집세라도 낼 판이지만 그도 저도 아닌 ‘네부랄’에서는 기껏 먹을 수 있는 안주가 치즈 쪼가리에 싼 양주이거나 아니면 병맥주에 과자부스러기가 전부였지만 술 한 잔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란 볼 일 보고 밑 안 닦은 것은 것 같은 찝찝함에 ‘네부랄’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언제나 검정고무신을 신고 나와서 반겨주는 ‘네부랄’아줌마 전문희 女史.
총기가 있어 그 연세에도 평택읍 구석구석 들고나는 사람들 이력서를 좍 꿰고 있는 것은 물론 웬만한 집 족보까지 모르는 것이 없어 이야기를 듣다보면 마치 평택시 연감年鑑을 읽는 듯합니다.
어차피 외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꼬박꼬박 따지고 계산을 해서 외상장부에 올리는 것도 아니요. 오늘 먹은 것이 전부 얼마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일도 흔치가 않았습니다. 그냥 다 먹었으면 일어나 각자 집으로 가면 그것으로 계산은 이미 끝난 것이고 다음 봉급날 찾아가서 얼마요? 하고 물은 다음 대충 ‘가부시끼’ 해서 전하면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날부터 또 외상이었지요. 혹시라도 뭐가 잘못되더라도 한번 웃으면 그것으로 다 끝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 가도 찾아보거나 만나볼 수 없는 사람 ‘네부랄’ 아줌마 ‘전문희 여사’
잘난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닌 세상에 시간이 갈수록 그 따듯한 정이 더욱 그립습니다.

 

이동진은 홍익대 미대 卒, 한광고등학교 교사, MBC창작동요제 대상곡 ‘노을’의 작사가다. ※ 블로그
http://blog.naver.com/jaa_yoo(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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