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난 후 커다란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진화의 주체는 인간 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이며 인간은 단지 그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프로그램화 된 기계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이었는데 기존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주장이라 무척 놀랐습니다.

물론 저자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문명으로 이런 유전자의 독재를 이겨낼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러한 사고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만, 무엇보다 가장 뇌리에 꽂혔던 것은 ‘이기적’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난 후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이기적’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불편하게 남았습니다.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가 눈에 들어온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저자는 유전자의 이기적 속성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며 설령 그런 유전자의 의도가 있다 해도 그로 인한 행위 자체는 ‘이타적’이 될 수 있으며 세상을 위하는 좋은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도 ‘이타적’이라는 말을 듣고 보니 마음은 편안해졌습니다.

저자는 협동심이나 착한 마음 같은 미덕들이 인간들을 번성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그러한 행위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유전자의 이기적 속성에 불과할 지라도 인류사회 발전에는 크게 이바지했던 만큼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익을 챙기기 위해 만인을 상대로 투쟁을 벌이는 것보다는 다른 개체들과 협동해서 진화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인데 결국엔 이타적이 될 수 있으니 이상한 안도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임에도 수천만 원을 기부하는 사람을 두고 백퍼센트 순수하게 이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물었을 때 그에 대한 답변이 모두 다르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책들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다양한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을 주었으니까요.

오래 전 읽었던 이 책들을 다시 소환해 낸 것은 얼마 전 어머니에게 했던 말이 생각나서입니다. 낡은 집에서 오래 생활했던 부모님을 위해 새로운 주방과 붙박이장을 해드리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돈이 없을 텐데 하며 크게 걱정하셨습니다. 그때 어머니에게 무심코 했던 말이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고 나중에 내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다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그때라도 뭔가를 해드릴 걸 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힘들더라도 지금 해야 한다는 것을 에둘러 한 말이었지요.

대부분의 자식들이 부모님 살아생전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나 몰라라 하다가도 막상 돌아가시고 나면 평생 가슴에 한을 품은 채 살아갑니다. 살아계실 때 하나라도 더 해드릴걸 하며 깊이 후회하고 그 후회는 뼛속까지 스며서 오랫동안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결국 내가 후회하지 않고 남은 생을 잘 살아가려면 미리 부모님을 챙기며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부모님께 하는 효도도 결국은 내가 잘 살아가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기적 유전자에 의해 하게 된 일이 결국에는 이타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 그래서 너와 내가 함께 행복하고 세상이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변해갈 수 있다는 것을 어머니에게 무심코 던진 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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