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김수영의 詩 ‘푸른 하늘’ 전문(1960)

내 방 책꽂이에는 많은 어르신들이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 관심이 많고 생각이 많았던 어르신들, 나보다 수백 년 전에 태어나 내가 보지도 못했던 많은 것들을 이미 경험하고, 사유하고, 깨달았던 분들…, 세상에 미숙한 나는 이분들의 경험에 기대어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론만으로 배운 세상과 현실에서의 세상이 달라 당혹했던 적도 있지만 그 역시 근본을 파고 들어가면 오래 전 세계 각국의 어르신들이 경험하고 깨달았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이 생기면 가장 먼저 책꽂이로 달려갔던 것은 그런 ‘해결사’ 내지는 ‘빽’이 있어 든든했기 때문입니다. 내게는 언제든지 내 질문에 답해 줄 현명하고 지혜로운 어른들이 가득했으니까요. 

그중에서도 철학자이자 정치이론가인 한나 아렌트에게서는 특히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 이유가 ‘사람’에 대한 관심이 같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녀가 관심을 기울였던 정치라는 분야도 ‘한 인간’이 아닌 ‘인류가 지구에 살며 세계에 거주한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라지요. 그분이 관심을 갖는 ‘정치’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유 없이 반감을 품게 되는 정치가 아니어서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이데거 밑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그와 연애했던 한나 아렌트, 실존주의 철학자인 야스퍼스의 지도를 받아 사랑의 개념에 대한 논문을 썼고, 발터 벤야민과 친구였던 그녀는 이름만 들어도 주눅이 드는 철학의 거장들과 동시대를 살며 친분을 나누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녀의 책을 꺼내드는 내겐 무척 가슴 뛰는 일입니다. 

그녀는 <전체주의의 기원>이나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 등 주로 권력의 속성과 정치, 권위, 전체주의 등에 관한 주제들의 글을 써냅니다. 그의 업적 상당부분은 집단적 정치행동과 같은 의미로서의 ‘자유’의 개념을 긍정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 없음’이 결과적으로 악의 진부함을 낳는다고 말해 나를 비롯한 많은 이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제 아무리 잘난 철학자라도 정치에 관해서는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일 수 없다는 말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오늘 문득 책꽂이에서 고이 잠들어 있던 한나 아렌트 할머니를 불러 다시 지혜를 구하는 것은 내 마음 속에 또 다시 이러저러한 의문들이 쌓여가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회자되는 정치인들의 행태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오만, 그리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 등에 관해 많은 생각들이 더해집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고 되뇌었던 김수영 시인의 말을 떠올리다 문득 우리가 누리는 자유에 배어 있는 ‘피의 냄새’의 근원을 떠올립니다. 아렌트 할머니는 내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까요. 다시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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