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즐거운 일을 하며 살아야죠”

인심을 간직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마을
조금 불편해도 우리 것 사랑하는 것이 중요

 
“이장을 맡은지 10년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지 못한다는 마음에 언제나 죄송한 맘뿐입니다. 우리 마을은 특히나 노인 분들이 많은데 제 일이 바쁘다보니 매일 찾아뵙고 문안인사를 드리지 못해 안타깝기만 하죠”
2004년 이장에 선출된 이후 10년째 이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현덕면 방축2리 이승헌 이장은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돌아본다. 최선을 다 한다고 했지만 지나고 보면 좀 더 잘할 수도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냄새만 풍기는 이장이라고 정의하며, 이장보다는 농사꾼이 어울린다고 쑥스런 웃음으로 손사래를 치는 이승헌 이장. 하지만 다섯 번 연속으로 마을 주민들의 지지를 받아 이장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그가 마을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마을 길 넓힌 것도 수로를 놓은 것도 다 이장이 잘해서 한 것이지. 말은 저래도 정말 일꾼이야. 누군가 나설지 모르겠지만 난 저 사람이 계속 일을 맡아봤으면 좋겠어”
경찰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후 마을에 정착한 한규영 노인회장은 이승헌 이장의 가장 큰 후원자다. 어느덧 눈가에 잔주름이 깊게 패여 어르신 소리를 들을 만 하지만 한규영 회장 눈에 비친 이승헌 이장은 아직 어린 마을 후배요 한편으로는 든든한 마을 대표이기 때문이다. 
 
변화 없는, 그래서 더 포근한 마을
방축은 ‘방죽말’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방축1리 방죽은 저수지가 있는 마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지명으로 평택에서 현덕면 방축리를 제외하고도 방죽말로 불리는 곳은 고덕면 방축2리와 율포1리가 같은 자연마을 지명을 갖고 있다.
마을회관 맞은편에 수령이 500년 넘는 느티나무가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돼 관리돼 있을 만큼 방축2리 ‘국말’의 역사는 조선 중기 이전부터 이어진다.
방축2리는 ‘방죽말’로 불리는 1리와는 달리 ‘국말’이라는 자연마을 지명을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 왕이 거하는 행궁이 있어 궁리(宮里)로 불리던 것이 음운 변화로 국리(菊里)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마을 입구가 머릿다리로 불리는 것은 일제강점기만 해도 이곳에 바닷물이 들어오는 갯골이었으며 배가 들어오는 포구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지만 불과 1m도 채 파기 전에 개흙이 나온다는 사실만이 옛 이야기를 증명하고 있다.
“저까지 6대째 이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세상이 많이 변하고 사람들 인심도 각박해졌지만 우리 마을은 그다지 큰 변화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을 한 구석의 상여집에는 아직 알록달록한 색이 채 바라지 않은 꽃상여가 10년 넘게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새로운 세상을 향한 긴 여정을 함께 할 임자를 기다리고 있다.
새참을 머리에 인 아낙네가 걸었음직한 논두렁엔 눈 녹은 논 사이에 떨어진 이삭을 찾아 날아온 겨우내 굶주린 까마귀 무리로 소란스럽다.
40년 전 마을에 이사 온 사람이 가장 최근일 정도로 인구 유입이 적었던 ‘국말’은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풍경을 이곳저곳에 간직하고 있다.
“40대 젊은 농부가 마을에 있어요. 다들 도회지로 나가곤 하는데 농사일을 하겠다고 마을에 남아 있는 모습을 보면 대견스럽습니다. 덕분에 마을에서 초등학생 구경을 할 수 있죠. 젊은 사람을 볼 때마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기분이 유쾌해집니다”

 

국산 농기계 사용, 농민이 앞장서야

‘국말’이 변화의 물결을 전부 피해간 것은 아니다. 지난해 9월 황해경제자유구역 지구해제가 있기 전까지 ‘국말’도 지구지정지역에 포함돼 재산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고 그러려니 했죠. 한동안 땅값이 들썩이고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다보니 방 한 칸도 제대로 수리 못해 불편을 겪기도 했지만 지구지정이 해제되자마자 언제 그랬냐 싶게 이젠 전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농사일 밖에 모르던 국말 사람들은 돈 보다는 땅을 선택했고 덕분에 인근 마을과는 달리 외지인의 손길을 덜 타 아직 50% 이상의 땅을 마을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도 오랜 세월이 지나다보니 예전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것이 있더군요. 바로 치안 문젭니다. 훔쳐갈 물건이나 재산이 그다지 많지 않아 큰 도둑은 없지만 좀도둑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우리 마을도 CCTV 설치를 생각해야 할 시점인가 봅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마을 인심도 그렇게 각박해지는 것이 아닌가 염려스럽다는 이승헌 이장은 농사 이야기가 나오자 깊은 속내를 풀어낸다.
“요즘 농사는 농기계가 없으면 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농기계가 국산이 아닌 일본산이더군요. 국산 제품도 쓸 만한 것이 많이 있는데 왜 수입산을 쓰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조금 성능이 떨어지고 조금 불편해도 그 만큼 값이 저렴하고 무엇보다 쌀 수입은 반대하면서 농기계는 수입품을 선호한다는 것은 농민들이 스스로 한 번 더 고민해볼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승헌 이장은 지난해 4월 직장암 선고를 받았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 그는 남은 인생을 알차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 끝에 현덕면이장협의회 총무직을 내려놨다. 스스로 해서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가장 보람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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